다분히 사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모임과 회의를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번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모임을 만들고 회장에 취임해 본 적이 있었다. 모임의 조속한 해체를 모임 결성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았던 세계 최초(?)의 모임인 지월회(池月會)가 바로 그것이다.
'풍덩 연못 속에 빠진 달'이라고 자못 몽환적인 명찰을 달았지만, 이 모임의 진짜 이름은 지월(地月), 그러니까 땅딸이들의 모임이다. 칠팔 년 전 우리 학과의 땅딸이 처녀, 땅딸이 총각들과 저녁마다 함께 운동을 하다가, 땅딸이 신세를 하루빨리 면하자고 만들었던 모임. 그러나 지월회는 모든 회원들이 소기의 목적을 슬며시 포기하고 하나 둘 탈퇴해버림으로써 채 1년도 되기 전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말았다.
내가 결성한 최초의 모임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해체된 뒤, 나는 정말 꿈에서조차도 그 어떤 모임도 만든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모임을 더 만들고, '참 철없는 모임'이라는 임시 명찰을 달아주고 싶다.
그 옛날 중국의 시인 두보가 어느 날 강가에 나갔다가 천이랑 만이랑 강변을 뒤덮은 황홀하기 그지없는 봄꽃들을 보고, 이 엄청난 사건을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하마터면 미칠 뻔했다고 한다.
"꽃 핐다, 꽃 핐다아, 강변에 꽃 핐다아아~."
하고 고래고래 외치면서, 늙은 시인이 미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내달려 간 곳은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술 친구. 그러나 바로 그 술 친구는 이미 열흘 전에 술 마시러 나가고 없었다고 하니,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원!
나와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밥을 먹고 있는 장옥관 시인도 하마터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밤에 교정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가 하는 말이 대뜸 이렇다.
"이형. 나 아까 하마터면 미칠 뻔했심다. 오늘 저녁 7시 무렵 딱 5분 동안 실로 장엄하게 펼쳐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던 한없이 형형하고 검푸른 하늘빛이 정말 감동적인 철학이었는데,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이미 다 사라져버렸지 뭡니까. 그런데 글쎄 이 희한한 풍경을 알릴 데가 아무데도 없었으니 미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기적이지, 이형이 학교에 있는 줄 알았으면 전화라도 한 통 때릴 걸 그랬어요."
그때 그가 만약 전화를 때렸다면 누이 좋고 매부도 좋았을 것이다. 미칠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고, 미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쁨을 누렸을 테니까. 게다가 나로서는 하던 일을 잠시 내팽개치고 냅다 교정으로 뛰어나가 삽시간에 사라져버렸다는 그 서럽도록 검푸른 하늘, 그 장엄무비한 우주 철학에 가슴 벅차게 동참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보너스까지 챙겨 넣을 수가 있었을 테니까.
하마터면 미칠 뻔한 이런 경험들이 시인들에게만 있는 아주 특별한 현상일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시인이 아니라도 내 주변에는 미치지 않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므로 나는 운흥사 벚꽃이 지랄발광하고 팝콘을 퍽퍽 터뜨릴 때, 서쪽 하늘에 총각, 각시 무지개가 한꺼번에 뜰 때, 가을날 저녁놀이 꽈배기를 틀 때, 천지간에 첫눈이 펄펄 내릴 때 간간이 전화나 메시지를 받는다. 물론 나도 미치면 안 되므로 내가 먼저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이 지상적 아름다움의 극점에 있는 풍경들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기쁨을 다 함께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취지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모임, 모임이긴 하지만 조직과 회칙과 회비는 물론이고 구태여 만날 필요도 없으며, 회원만 대여섯 명 있는 모임, 보기에 따라서는 역사 의식과 현실 인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다 참 한심하고 철딱서니 없는 이 생뚱한 모임에 가입하실 분은 요오 요오 붙어라.
이종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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