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참 철없는 모임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 보고 알려줄 사람만 있어도 행복

다분히 사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모임과 회의를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번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모임을 만들고 회장에 취임해 본 적이 있었다. 모임의 조속한 해체를 모임 결성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았던 세계 최초(?)의 모임인 지월회(池月會)가 바로 그것이다.

'풍덩 연못 속에 빠진 달'이라고 자못 몽환적인 명찰을 달았지만, 이 모임의 진짜 이름은 지월(地月), 그러니까 땅딸이들의 모임이다. 칠팔 년 전 우리 학과의 땅딸이 처녀, 땅딸이 총각들과 저녁마다 함께 운동을 하다가, 땅딸이 신세를 하루빨리 면하자고 만들었던 모임. 그러나 지월회는 모든 회원들이 소기의 목적을 슬며시 포기하고 하나 둘 탈퇴해버림으로써 채 1년도 되기 전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말았다.

내가 결성한 최초의 모임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해체된 뒤, 나는 정말 꿈에서조차도 그 어떤 모임도 만든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모임을 더 만들고, '참 철없는 모임'이라는 임시 명찰을 달아주고 싶다.

그 옛날 중국의 시인 두보가 어느 날 강가에 나갔다가 천이랑 만이랑 강변을 뒤덮은 황홀하기 그지없는 봄꽃들을 보고, 이 엄청난 사건을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하마터면 미칠 뻔했다고 한다.

"꽃 핐다, 꽃 핐다아, 강변에 꽃 핐다아아~."

하고 고래고래 외치면서, 늙은 시인이 미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내달려 간 곳은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술 친구. 그러나 바로 그 술 친구는 이미 열흘 전에 술 마시러 나가고 없었다고 하니,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원!

나와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밥을 먹고 있는 장옥관 시인도 하마터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밤에 교정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가 하는 말이 대뜸 이렇다.

"이형. 나 아까 하마터면 미칠 뻔했심다. 오늘 저녁 7시 무렵 딱 5분 동안 실로 장엄하게 펼쳐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던 한없이 형형하고 검푸른 하늘빛이 정말 감동적인 철학이었는데,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이미 다 사라져버렸지 뭡니까. 그런데 글쎄 이 희한한 풍경을 알릴 데가 아무데도 없었으니 미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기적이지, 이형이 학교에 있는 줄 알았으면 전화라도 한 통 때릴 걸 그랬어요."

그때 그가 만약 전화를 때렸다면 누이 좋고 매부도 좋았을 것이다. 미칠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고, 미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쁨을 누렸을 테니까. 게다가 나로서는 하던 일을 잠시 내팽개치고 냅다 교정으로 뛰어나가 삽시간에 사라져버렸다는 그 서럽도록 검푸른 하늘, 그 장엄무비한 우주 철학에 가슴 벅차게 동참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보너스까지 챙겨 넣을 수가 있었을 테니까.

하마터면 미칠 뻔한 이런 경험들이 시인들에게만 있는 아주 특별한 현상일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시인이 아니라도 내 주변에는 미치지 않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므로 나는 운흥사 벚꽃이 지랄발광하고 팝콘을 퍽퍽 터뜨릴 때, 서쪽 하늘에 총각, 각시 무지개가 한꺼번에 뜰 때, 가을날 저녁놀이 꽈배기를 틀 때, 천지간에 첫눈이 펄펄 내릴 때 간간이 전화나 메시지를 받는다. 물론 나도 미치면 안 되므로 내가 먼저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이 지상적 아름다움의 극점에 있는 풍경들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기쁨을 다 함께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취지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모임, 모임이긴 하지만 조직과 회칙과 회비는 물론이고 구태여 만날 필요도 없으며, 회원만 대여섯 명 있는 모임, 보기에 따라서는 역사 의식과 현실 인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다 참 한심하고 철딱서니 없는 이 생뚱한 모임에 가입하실 분은 요오 요오 붙어라.

이종문(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육군사관학교에 대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이에 대한 육사총동창회의 반발이 이어졌다. 총동창회는 대통령의 발언이 사...
삼성전자 '갤럭시Z 폴드8'의 역대급 사전예약에 힘입어 구미에서 열린 '2026 갤럭시 런칭 페스타 with 구미' 행사에는 200여 명이 ...
경북 지역 지자체들이 인구 방어선 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으며, 구미시는 40만명 방어선 붕괴 위기를 겪고 있고, 고령군은 인구 3만명 회복을...
필리핀에서 중국인이 필리핀인으로 신분을 위조하여 전력망 사업에 개입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가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필리핀 이민국은 로런..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