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인류도 곧…

로완 제이콥슨 지음/노태복 옮김/에코리브로 펴냄

미국 플로리다주에 사는 데이브 하켄버그는 꿀벌 치는 사람이다. 2006년 11월 오후, 고추밭에 들어갔던 그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날은 영상 18도의 볕이 잘 드는 화창한 날로 벌들이 날아다니기 좋은 날씨였다. 평소라면 수천 마리의 꿀벌들이 윙윙대며 꽃 속의 단물인 꽃꿀(화밀)을 실어 나르느라 바쁘게 날아다녀야 할 때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고추밭은 조용했다. 벌통 10개를 살펴보니 꿀벌이 상당히 줄어 있었다. 그가 가진 벌통 400통 전부로 계산하면 엄청난 손실이었다.

플로리다는 벌들이 겨울을 나기 좋은 장소다. 하켄버그는 몇 주 전 벌통을 내놓을 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벌통은 튼실했고 벌통마다 꿀벌과 봉아(蜂兒:발육단계의 벌로 알, 애벌레, 번데기 단계를 모두 아우르는 말)가 가득 차 있었다. 주변에는 브라질 고추나무가 무성했다. 몇 주 동안 벌통을 내놓기만 하면 상당량의 벌꿀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꿀벌들이 사라진 것이다. 양봉가의 골칫덩어리인 꿀벌 응애의 짓도, 벌집나방이나 벌집딱정벌레의 짓도 아니었다. 놈들이 꿀벌들을 죽였다면 벌통에 꿀벌들의 사체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체는 별로 없었다. 누가 그 많은 벌들을 납치했다는 말인가. 납치가 아니라면 벌들이 스스로 집을 나가버린 것일까? 무슨 이유로?

꿀벌의 실종은 하켄버그만 겪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2005년 1월 가까운 친구이자 텍사스주에서 대규모로 꿀벌을 치는 친구 클린트 워커가 전화를 내서는 대뜸 "벌들이 가버렸어"라고 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꿀벌은 식물의 몸종

1억5천만년 동안 곤충은 식물의 짝짓기를 돕는 몸종 역할을 했다. 곤충이 없다면 오늘날 지구상의 대부분 식물은 번식할 수 없다. 물론 곤충이 선량한 마음으로 식물의 짝짓기를 돕는 것은 아니다. 벌들은 꽃꿀이라는 뇌물을 받고 식물의 짝짓기를 돕는다. 꽃꿀은 꽃 속의 작은 샘 안에 담긴 영양 가득한 단물이다. 8천만년 전쯤부터 벌들이 특별히 그것을 주식으로 삼았다. 2만종의 벌 가운데 오직 한 종만이 남달리 꽃꿀을 애용해왔다. 그 곤충이 바로 학명이 아피스 멜리페라인 서양종 꿀벌이다.

양봉업자 하켄버그의 꿀벌이 사라진 것은 국지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전면적인 현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만약 더 많은 지역에서 꿀벌들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벌이 사라지면 사람들의 식단은 어떻게 변할까.

더 이상 싼값으로 맛있는 사과를 맛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베리와 체리와 멜론 값은 금값처럼 치솟을 것이다. 커피 한잔을 마시는 일도 사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우유조차 마시기 힘들어질 것이다. (미국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버몬트주 챔플레인 밸리에서 자라는 젖소들은 봄과 여름 내내 클로버와 자주개나리를 뜯어먹고 지낸다. 둘 다 낙농업에 없어서는 안될 풀인데 이 식물들을 가루받이시키는 존재가 바로 벌이다.

이뿐만 아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쥬크, 스쿼시, 호박을 비롯한 박과 식물은 식단에서 자취를 감춘다. 후식으로 즐겨먹는 초콜릿이나 망고를 비롯한 대부분의 열대 과일도 사라질 것이다. 배 자두 복숭아 감귤 키위 해바라기 카놀라 아보카도 상추 당근 양파 브로콜리의 수확량도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먹는 식물의 80%는 전적으로 가루받이에 의존한다.

꽃이 없으면 과일은 없다. 이는 자명한 이치다. 그러나 꽃이 핀다고 과일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암술과 수술로 이루어진 꽃은 꽃가루가 암술머리로 이동해 밑씨와 결합해야 씨가 생긴다. 그 역할을 꿀벌들이 담당해온 것이다. 그러니 벌들이 사라지면 우리의 식사는 상상 이상으로 초라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굶어죽을지도 모른다.

◆누가 꿀벌을 죽였나

꿀벌들은 왜 사라졌는가? 처음에 양봉업자들은 자신의 게으름과 부주의를 탓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속속 다른 견해를 발표했다. 꿀벌응애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응애는 발생한 지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벌떼를 어디론가 옮길 수 없다. 응애는 꿀벌을 죽일 수 있지만 꿀벌을 들어 옮길 수는 없다. 영양실조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다. 바이러스 혹은 기생충 때문이라는 의견도 대두됐다. 미국 부저병 세균, 곰팡이 혹은 과다한 살충제 탓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이 모든 원인은 벌들에게 치명적이며 벌들이 죽어가는 원인이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벌들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죽었다면 벌통에 사체가 남아 있어야 하지 않는가? 과학자들은 버려진 벌통을 조사하고, 수천마리의 벌을 해부했다. 그러나 꿀벌 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문제는 벌통 속에서 죽은 벌이 아니라 사라진 벌인 것이다.

벌들의 군집붕괴현상은 한두 가지 이유 때문은 아니다. 초기에는 휴대전화가 가장 강력한 피의자로 지목됐다. 휴대전화에서 방출된 전자기파가 벌의 더듬이나 뇌에 미세한 영향을 미쳐 비행능력을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이를 구하러 멀리 떠났던 벌들의 GPS장치는 작동 불능이 되고 결국 헤매다가 체력이 바닥나 돌아올 수 없다. 실제로 휴대전화 실험 결과 벌들의 귀가 시간이 훨씬 늦어졌다. 아예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벌도 있었다. 돌아오지 못한 벌들은 낯선 곳을 헤매다가 생을 마감한다. 휴대전화만이 군집 붕괴의 원인은 아니다. 책은 유전자 조작식물, 바이러스, 살충제 등도 벌들의 군집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니까 원인은 '자연을 배신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품을 떠나 어느 정도 성공한 인간은 이제 '인간의 산업모델'을 자연에 강요하기 시작했다. 휴대폰 전자파, 유전자 조작, 살충제, 항생제, 도시화, 지구온난화 등은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연장(도구)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순응시킬 수는 없었다. 꿀벌 군집 붕괴는 그 답이며, 경고이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꿀벌이 사라진다면 4년 안에 인류도 멸종할 것이다." 334쪽, 1만6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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