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결핵·폐렴 앓는 외국인노동자 캄란씨

▲ 심각한 결핵과 폐렴 증세를 보이는 파키스탄인 캄란씨가 지난 30일 적십자병원에서 입원 허락이 나지 않자 힘들어하고 있다. 병원 측의 양해로 당분간 입원하기로 했지만 병세가 얼마나 호전될지는 미지수다. 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 심각한 결핵과 폐렴 증세를 보이는 파키스탄인 캄란씨가 지난 30일 적십자병원에서 입원 허락이 나지 않자 힘들어하고 있다. 병원 측의 양해로 당분간 입원하기로 했지만 병세가 얼마나 호전될지는 미지수다. 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자신의 병세가 어떤지도 정확히 모른 채 병원을 전전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 파키스탄인 캄란(26)씨. 결핵과 폐렴 증상으로 파티마병원과 경대병원, 적십자병원 등을 번갈아가며 벌써 2개월째 입원 치료를 받는 중이다. 지난달 30일 만난 그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자신이 심각한 상태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죽을 각오로 병마와 싸워야 한다"는 사회복지사의 격려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많이 아파요?"라고 되물었다.

현재 캄란씨는 폐 전체로 결핵균이 번진 상태다. 폐렴까지 겹쳐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폐가 허옇게 보인다고 했다. 의사는 "약으로 전염성을 떨어뜨리고 증세를 호전시킬 수는 있겠지만, 낫는다 하더라도 폐에는 손상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결핵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지난 2월 8일 외국인 주말무료진료를 통해서였다. 한 달 넘게 기침이 잦고 미열이 계속되자 무료진료소를 찾았던 것. 그를 진찰한 의료진은 결핵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대기중이던 다른 환자들까지 모두 마스크를 씌우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외국인노동자라 병원에 입원하기도 쉽지 않았다. 결핵에 폐렴까지 겹치면서 고열이 계속돼 응급진료가 필요했지만 경북대병원에서 "받아줄 수 없다"며 거부하는 통에 한나절을 길바닥에서 보내야 했다. 파티마병원에서 치료받은 전력이 있는데다 병세가 심상찮아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병원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것도 걸림돌이 돼 결국 적십자병원 측이 지불보증을 서고 난 후에야 겨우 입원할 수 있었다.

이웃사랑 취재진이 찾아간 날은 경북대병원에서 퇴원해 적십자병원에 다시 입원하기로 한 날이었다. 적십자병원에서 1시간을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경북대병원에서 발생한 본인부담금 30여만원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캄란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경산 진량공단의 한 공장까지 다녀와야 했다. 밀린 임금 80만원을 통장으로 입금시켜 달라고 했지만 공장 사장이 "반드시 본인이 와야 줄 수 있다"고 버텼던 것.

하루 종일 씨름한 끝에 퇴원수속을 마치고 대여섯개의 보따리를 둘러맨 그가 적십자병원으로 찾아왔지만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경대병원에서 처방한 약은 적십자 병원에서 사용할 수 없는 품목이어서 입원을 받아주기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갈 곳이 없는 그는 병원 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 측의 배려로 당분간 병원에 입원해 좀 더 치료를 받기로 했지만 그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기침은 끊이지 않았고 80㎏에 달했던 몸무게는 병마와 싸우느라 60㎏대로 줄어들었다. 병원에서는 "언제 다시 열이 오를지 몰라 안심할 수 없는 상태"라며 "몇 달 동안은 하루 두 번씩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병원비 걱정도 그의 얼굴을 어둡게 했다. 벌써 3개 병원에서 발생한 병원비만 해도 1천만원을 넘어선다. 정부 보조를 받더라도 20%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데다, 각종 비급여 검사비와 약값 역시 본인부담이다.

그가 파키스탄에서 한국행을 결심한 것은 '돈' 때문이었다.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는 아버지의 벌이로는 7명의 동생들과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11명의 대식구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2006년 3월 군산의 한 자동차 프레스 공장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땅을 밟았지만 5개월 정도 일한 뒤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갈 곳을 잃었다.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그는 친구의 소개로 대구의 한 공장에서 6개월 동안 일했지만 급여 250만원을 받지 못한 채 쫓겨나야 했다. 이후에도 하양과 영천 등지의 공장을 돌며 일했지만 올 1월 병마가 찾아오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캄란씨는 고개를 저었다. "빨리 나아 다시 돈을 벌어야만 합니다. 몸이 아프다고 '코리안드림'을 여기서 접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스크 사이로 잔기침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지만 그의 눈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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