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진 시인의 첫 시집 '비슬산 사계'는 불교의 연기(緣起)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연기'란 세상사 모든 일이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상이다. 그러나 시인에게 어떤 일이 연기에 의해 발생한 어쩔 수 없는 무엇은 아니다. 김욱진에게 '연기'는 모든 것을 녹이는 용광로처럼 보인다. 그는 이 용광로를 통해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불순물을 녹이고 걸러낸다. 시인은 노인 문제, 자살 문제, 유괴 문제, 이혼 문제, 농촌 문제, 환경 문제 등 사회적 부작용을 불교의 인연법과 도반의식으로 환기시키며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속세에 나타나는 문제들을 자기 정화(淨化)를 통해 이미지와 은유로서 형상화하는 것이다.
시인은 또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찾고 있다. 시인이 어떤 이유로 달성군 비슬산 자락에 20여년간 기대어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이 또한 우연 아닌 필연의 순간순간들로 채워진 인연의 그림자처럼 보인다. '달빛 어린 비슬산/ 등성이마다 거문고 줄 잡아당기는/ 한갓진 물소리 바람소리 솔방울 웃음소리'(비슬산 사계) 들으며, 오늘도 시인은 구도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시인은 지금도 비슬산을 헤매며 자신을 찾고 있고, 비슬산은 그런 시인의 속내를 모른 척 바라보는 듯하다.
122쪽, 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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