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생명의 전화' 자살 상담 급증…하루 통화 4건

"어떻게 죽으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나요?"

순간, '대구 생명의 전화' 상담원 김국원(66)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기는 죽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라 사는 법을 알려드리는 곳입니다. " 3형제 중 막내라는 30대 남성은 "치매와 병환에 시달리는 부모님을 모시기 힘들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10년 동안 부모를 모셨다는 그는 외면하는 형들과 부모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3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후 근근이 살아왔다는 그는 "부모님 모시느라 지금껏 장가도 못 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그저 죽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상담사는 "빈곤층을 위한 요양시설에 부모님을 맡기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30여 분 설득 끝에 그는 한 달 뒤 다시 통화할 것을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상담원이 수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40대 후반 남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유통업에 종사하던 그는 얼마 전 부도를 냈고 5억원의 빚을 졌다고 했다. 아내와 두 자녀까지 빚더미에 시달리게 하기 싫어 두 달 전 합의이혼을 했다는 그는 "요즘 죽음을 준비한다"며 "이미 인터넷 등을 통해 여러 자살 방법을 알아봤다"고도 했다. "인생을 절반밖에 살지 않았는데 포기하는 건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봅시다." 상담원의 간곡한 설득에 그는 "이야기를 들어줘 고맙다. 다시 생각해 보겠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김국원 상담원은 "'나만 죽으면 된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요즘 많아졌다"며 "지난해 말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27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 '대구 생명의 전화' 상담실. 상담원들은 악화하는 경제 상황에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상담 전화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이날 하루 동안 걸려온 자살 관련 상담은 4건. 지난해까지 자살상담은 한 달에 1, 2건에 불과하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셈이다. 게다가 실제 자살 시도까지 가는 극단적인 상황도 크게 늘었다. 대구 생명의 전화에 따르면 자살 시도 상담 건수는 2007년 93건에서 지난해 379건으로 무려 4배가량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잇따르는 동반 자살 소식이 심적으로 취약한 이들의 자살 충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풀이했다. 인격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사회적·경제적 곤경에 취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타인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상승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대구 생명의 전화 이경미 소장은 "요즘 젊은 세대는 곤경 대처능력이 떨어진다"며 "작은 고난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만 있다면 상당수 자살을 막을 수 있다"며 "주변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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