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줄로 읽는 한권] 이병주의 동서양 고전 탐사

"그의 세계는 풍경화처럼 한눈에 모아볼 순 도저히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아이디어 자체를 거부한다. 루벤스, 렘브란트 같은 대가도 그의 그로테스크한 세계의 문턱에서 화필을 던져버릴 것이 분명하다. 반 고흐, 칸딘스키, 달리 등의 의욕을 염두에 떠올려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의 접근에 가능할 뿐이고 그들의 묘사력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없다."-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중에서-

『이병주의 동서양 고전 탐사 1』 이병주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337쪽/1만7천원

"허다한 사상가들이 혹독한 죽음을 당한 환경 속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겪었다고는 하나 고종명(考終命)을 했고 임종의 그 자리에서까지 저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상백 씨의 말을 빌려 소행적(小幸的)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를 비극적인 사상가라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강남에 심었다면 귤이 될 수 있었던 것이 강북에 심어졌기 때문에 탱자밖엔 되지 않았다는 그런 설움 때문만은 아니다. "-정약용 중에서-

『이병주의 동서양 고전 탐사 2』 이병주 지음/생각의 나무 펴냄/287쪽/1만5000원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 같던 대학 시절,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과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다가왔고 종국에는 나 자신의 초라한 절망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글쓰기가 세상에 대한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그것은 결국 내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에 절망이 있었다. 작가 조세희와 이문열이 이병주가 쓴 『허망과 진실』을 읽고서 '도스토예프스키의 평전을 써볼 생각을 포기했다'는 토로는 그 절망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크나 큰 행복이다. 『이병주의 동서양 고전 탐사』는 작가 이병주가 만난 서양 지성 3인 알퐁스 도데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동양의 지성 3인 루쉰(魯迅), 정약용(丁若鏞), 사마천(司馬遷)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담고 있다. 작가는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은 '인생이란 허망한 것'이라며 이는 '니체도 루쉰도 마르크스도 같다'고 말한다. 도대체 그가 말한 허망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보는 그의 시선에 있다. '죄 짓지 않고 살 수 없는 인간, 그렇다고 해서 죄에서 면책될 수 없는 인간, 이러한 생의 실존적인 의미에 부여된 것이 곧 『죄와 벌』이다' 결국 허망이란 그것을 뚫고 진실을 찾아내었을 때 아름다운 것이다. 또한 작가는 루쉰을 이야기하면서 좌우익의 불순한 권모술수가 낳은 회색 분자라는 자신에 대한 낙인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립과 갈등의 불행한 뉴스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행복에 기여하지 않은 이데올로기가 무슨 쓸모인가"라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더욱 가슴 저리게 와 닿는다. 전태흥 여행작가 (주)미래티엔씨 대표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