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토속민요에 서양리듬 '퓨전'…대구경북 민요박사 1호 배경숙

'우리 어매 알았으면 버선발로 내달리고 / 울 아배 알았으면 양발로 내달릴걸 / 가네 가네 나는 가네 상주함천 나는 가네 / 앞에 가는 구름짱아 뒤에 가는 바람짱아 / 우리 집에 가거들랑 어매한테 전해주오 / 어매 어매 나는 가요 상주함천 나는 가요'

경북 의성 신평에서 불리던 '오빠노래'라는 제목의 토속민요 한 토막이다. 올케와 시누이가 물가에 있다가 빠진 것을 오빠가 올케를 건져주자 시누이가 죽어가며 오빠에 대한 원망을 담은 내용이다. 농민들의 모심기 소리에서도 비슷한 가사가 등장, 구전돼오던 것이 2005년 현대적으로 바뀐 음이 달려 개인 민요발표회에서 선보였다.

이 토속민요를 현대식으로 바꿔 선보인 이는 영남민요연구회 배경숙(54) 회장. '대구경북 1호 민요박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그는 2005년부터 매년 개인발표회를 통해 묻혀있던 토속민요를 끄집어내는 산파역할을 하고 있다.

6년째 활동해오고 있는 영남민요연구회를 통해 문화 컨텐츠로서 민요를 개발하고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중이라는 배 회장. 화전노래, 꽃노래, 오빠노래, 댕기노래, 사모곡 등 그가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민요도 15곡이 넘는다.

"관객이 동화될 수 있고 호응할 수 있어야 발전이 있고 변화가 생긴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배 회장은 "민요라고 해서 모두 심심한 건 아니며 관객들의 반향을 설문조사로 물어 발전 방향을 모색해볼 생각"이라고 말할 정도로 민요에 대한 애착이 유별났다.

구성진 민요가락을 살리기 위해 10년째 아침마다 코세수(코로 소금물을 흡입해 뱉는 것)를 해오고 있다는 배 회장은 정작 걸걸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취미로 시작한 장구

-지난해 박사학위를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1955년생이니 늦깎이 공부를 한 셈이죠. 원래 영남대 식품영양학과 74학번입니다. 1978년부터 4년간 칠곡에 있는 농촌진흥청에서 영양사로 근무했었으니까요."

-민요박사라고 하면 민요를 잘 부르는 겁니까, 잘 만드는 겁니까.

"제 전공은 부르는 겁니다. 하지만 음도 따서 정리도 하고 새롭게 창작도 합니다. 민요를 연구해 발표하기도 하기에 두루 다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요를 접하게 된 계기가 뭐였습니까.

"남편과 같은 취미를 갖기 위해 장구를 배운 게 인연이 됐습니다. 취미가 같으면 함께할 시간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장구를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남편이 TV를 보면서 전주대사습놀이를 상당히 좋아하더라고요. 시골에서 풍물을 보고 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국악의 국자도 모르던 때였습니다만 무작정 전화번호부를 찾아 국악학원으로 갔지요. 그때가 1989년이었는데 30대 중반의 나이였어요. 나이가 50쯤 되면 경로당에 다니면서 노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장구를 배우게 된 거였어요. 그때부터 8년 동안 장구를 치다가 소리를 하게 된 거지요."

-나이 마흔이 넘어서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말이군요.

"장구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배웠어요. 국악은 '니나노'라는 인식이 있어서 밝히기 난감했거든요. 그 때 장구를 배우는 사람들은 죄다 나이든 아주머니들이었어요. 보통은 장구를 치고나면 노래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아리랑도 부르지 못했어요. 그래서 노래를 가르쳐주는 학원으로 갔지요. 1년 정도 배우니까 제대로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정은하(현 영남민요보존회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2001년 영남대 국악과에 학사편입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민요를 배우게 됐습니다. 장구를 안 배웠더라면 지금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든 셈이지요. 내면에 국악에 대한 끼가 있었던 것 같아요. 늦게 공부를 시작해 늦게 도가 텄다고 할까요."

?민요박사 배경숙

-민요가 뭡니까.

"민요라고 하면 아리랑을 떠올리는 데 아리랑은 민요의 일부입니다. 작자미상으로 알려진 민요의 대부분은 토속민요인데요. 민요는 일단 서양음악과 박자가 다릅니다. 한 박자를 3등분하는 것이 민요인데요. 쉽게 구분되는 건 멜로디가 다르다는 겁니다. 이게 민요인 지 일반 노래인 지 들어보면 압니다"

-언제 민요를 처음 만드셨습니까.

"2005년부터 개인 민요발표회를 해오고 있는데요. 발표회를 준비하면서부터지요. 발표회 준비를 위해 곡을 만들기까지 2년 정도 걸렸어요. 편곡은 다른 분이 하셨지만, 작창은 제가 했습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면 작곡자가 음을 따 곡을 만드는 셈이지요. 피리, 대금 소리 등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은 편곡자에게 맡기고요. 토속민요가 전해져오는 현장에 가서 주민들로부터 직접 민요를 듣고 채록하는 작업이 이어졌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민요는 대부분 작가미상입니다. 작사·작곡을 한 셈인데 저작권이 있습니까. 노래방에 수록된 것이라도.

"저작권은 당연히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래방에는 제 노래가 없지요. 유명가수가 불러 유행하게된다면 노래방에서도 제가 만든 곡을 찾을 수 있겠지요."

-민요를 창작한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영감을 얻는 곳이 있습니까.

"토속민요는 말 그대로 흙에서 나오는, 민초들의 소리입니다. 민요가 전해지는 현지에서 들으면서 음원이 있는 것은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대로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곡을 만들 때 상당한 영향을 받습니다. 다만 노랫말은 원곡 그대로 씁니다. 노랫말만 있는 것은 새로 음을 만들지요. 지금은 '피날레'라는 음을 표시해주는 소프트웨어가 있어 제가 직접 곡을 만들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한 지상파 방송에서 만든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걸 들어보셨습니까.

"당연하지요. 저는 다만 영남민요가 전공이라 그 부분만 듣고 참고했습니다."

?민요 대중화 작업

-열과 성을 다해 만드시는 민요지만 사람들은 민요를 잘 부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음악교과서에도 몇몇 민요가 실려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에서 민요가 잘 나오진 않지요. 현대인들에게 어필하려면 여러 가지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하나가 편곡인데요. 원래 모습대로는 절대로 흥행할 수 없다고 봅니다. 민요는 특정인들만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또 크로스오버가 대세입니다. 무용 안무를 짜듯이 음표라는 재료로 현대인의 귀에 맞게 재현할 필요가 있지요. 개인발표회를 통해 성악 합창단이 민요를 불러보기도 했습니다.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토속민요가 대부분 집단적으로 불린 노래였기 때문이지요. 성악가와 제가 함께 민요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시도는 없었습니까.

항상 원곡을 들려주고 제가 바꾼 곡도 들려줍니다. 또 토속민요가 불리던 실제 상황을 재현해 부릅니다. 예를 들면 디딜방아는 방아를 돌리며 일하면서 이렇게 불렀다고 보여주는 것이지요. 한복 입고 부르는 것도 지양합니다. 한복을 입고 부르는 노래가 민요는 아니거든요. 심지어 서양음악 리듬으로 민요를 부르기도 합니다. 몇몇 가요의 경우 민요를 노래 속에 집어넣기도 하지 않습니까. 퓨전이 대세입니다. 대중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시도들이지요."

-하지만 민요란 오랜 기간 동안 전승된 노래들입니다. 감정의 응축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퓨전을 지향할 경우 감정 전달이 가능할까요.

"감정의 응축을 살리기 위해 가사를 그대로 쓰려 애씁니다. 전라도 민요에 전라도 사투리가 묻어있듯 경상도 민요에 나타난 경상도 사투리 등은 그대로 살립니다. 하지만 감동을 주기 위해 구전되던 음을 그대로 쓰기는 힘듭니다. 그렇게 해서는 대중화할 수 없지요. 보존도 의미가 있습니다만 원곡 그대로를 고집하면 대중에게 다가가기 힘듭니다."

-윤도현의 아리랑은 어떻게 봅니까.

"아리랑이 나왔으니 짚고 넘어갈 부분인데 학계에서는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 유명한 아리랑은 모두 1920년대 이후 나온 상업적인 노래로 보고 있습니다. 윤도현이 불렀던 아리랑도 나운규의 아리랑에 삽입된 노래를 요즘 분위기로 바꾼 것이지요. 아리랑은 구전된 토속민요와 다릅니다. 토속민요는 일하던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입니다. 당시의 유행가라고 볼 수 있는데요. 하지만 흑인음악 대부분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돼 미국에서 바뀐 모습으로 발전했듯 토속민요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씩 바뀌어야 인지도와 호응도가 높아지지요. 윤도현의 아리랑도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배경숙은?

1955년 대구 출생

1974년 경북여고 졸업

1978년 영남대 식품영양학과 졸업

1989년 장구 배우기 시작

2001년 영남대 국악과 학사편입

2008년 영남대 한국학 전공 문학박사 학위

현재 영남대 국악과 출강

이재욱의 영남전래민요집 연구(국학자료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