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안동의 거리에서 술집에서 혹은 골방에서 시노래가 들려온다. 시노래는 시인의 영혼이 손끝에서 언어의 옷을 입고 작곡자의 가슴에서 가락을 얻어 가인의 영혼으로 스며들어 입으로 흘러나오는 감동의 릴레이다. 그것은 마치 한 방울의 이슬이 땅속에 스미어 나무의 혈관을 타고 올라 나뭇가지 끝에서 터지는 꽃과 같은 여정을 지녔다. 시노래는 세상 모든 것들처럼 따로 또 같이, 흩어지고 모이고, 또 헤어지고 만나는 지점마다 생겨나는 인간사의 또 다른 절경을 한 자락씩 펼치는 드라마다. 시는 노래가 되고, 노래는 시가 되어 이 세상 모든 가슴 있는 것들에게 다가가 고스란히 돋을새김 된다.
한때 시는 그 자체로 노래였다. 세상과 자연과 삶터에서 얻은 감동을 선율에 실어 노래했다. 나름의 시마다 가만가만 운율을 따라 마음을 실어가다 보면 어느새 한편의 노래가 된다. 시인은 노래하는 사람이었고, 시는 노래였다. 시인을 일컬어 가객이니 소인이니 음유시인이니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가 전에 없이 노래를 잃어가고 있다. 산문 같아지고 의미 전달보다는 보여주려는 데 매달리다 보니 노래는 간데없고 기호 같은 문자만 어지럽다. 젊은 시인들의 시는 엽기를 넘어 기괴하기까지 하다. 성대를 제거한 가수의 초상화를 보는 듯하다.
점차 시가 노래를 잃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그룹이 있다. 1999년에 출범한 시노래 모임 '나팔꽃'이 그들이다. 도종환, 안도현을 비롯한 여러 시인들과 백창우, 안치환 같은 작곡가 겸 가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시에 노래를 붙여 독자대중과 만나는 자리를 늘려가고 있다.
시에 노래를 붙이는 일은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노래'라는 신조어가 대중성을 얻은 것은 이들의 활동이 단초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몸이던 시와 노래가 따로국밥으로 놀다가 다시 비빔밥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이다.
'나팔꽃'은 평지돌출이 아니다. 1980년대 민중가요의 대부분이 시로 만든 거였다. 대구지역에서도 시를 노래로 만들어 활동하던 '소리패 산하' '소리타래'가 있었다. 물론 전국을 누비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 '꽃다지' '새벽' 같은 패들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텃밭에서 오늘날의 시노래가 싹이 텄다고 보는 것이 맞다.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내가 사는 안동에도 시노래패가 생겼다. 위대권, 강미영 등 몇몇 활동가들이 만든 '징검다리'가 첫 음반을 낸다고 한다. 나 같은 시인 떨거지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노래의 인기가 대단하지는 않다는 것을 아는 그들, 사비를 털어가며 시노래의 뜻을 보듬고 가꾸어갈 그들의 첫걸음에 손을 내민다. 징검다리, 시인을 건너, 작곡가를 지나, 가수를 돌아 독자들에게 이르는 징검다리를 언제까지나 징검징검 오고가길 바란다.
안상학 시인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