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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조 들여다보기] 봄이 가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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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려 하니

무명씨

봄이 가려 하니 내 혼자 말릴소냐

못 다 핀 도리화(桃李花)를 어이하고 가려는다

아희야 선술 걸러라 가는 봄을 전송하자.

5월이 간다. 5월이 간다는 것은 곧 봄이 간다는 것이다. 2009년 대한민국의 봄은 자연의 흐름에서는 여느 해와 그리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늦봄은 모든 국민들이 참으로 착잡한 심정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주는 충격이 크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끊이지 않는 불행이 가는 봄을 아쉬워할 여유도 주지 않고 우리의 내일을 걱정하게 만든다. 내일은 오늘의 또 다른 날일 수밖에 없으니까.

이 시조는 작자가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사실이 이 작품을 문맥에 나타난 대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 사회는 신분에 따른 차별이 많았다.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누어진 신분에 따라 갖는 권리와 의무가 달랐고, 부모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정해졌다. 따라서 큰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분적 제약 때문에 그 뜻을 펴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초장 '봄이 가려고 하니 그것을 나 혼자 어찌 말릴 수 있을 것인가'는 자연의 운행 같은 세상의 큰 흐름 앞에서 스스로 그 제한을 극복할 힘을 갖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체념으로 읽힌다. 중장 '못 다 핀 도리화를 어찌하고 가려는가'는 뜻을 펴지 못한 사람의 심정을 못 다 핀 도리화에 비유하여 안타까움이 한으로 스미게 한다.

종장 '아이야 덜 익은 술이나마 걸러라, 무정스레 떠나는 봄을 전송하겠다'는 것은 훈련된 중세적 교양으로 자기 분수에 따른 삶을 수용하며 체념의 미학을 담담하게 떠받친다. 조선의 시대적 애련(哀憐)을 읊은 것으로 그 슬픈 아름다움에 가슴이 아리다.

삶이 놓이는 환경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곳이 어떤 곳이어야 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만민 평등의 명제가 실현되지 않는 세상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신분 차별에 조금도 못지않은 빈부의 차가 극심한 오늘의 세상, 우리는 어떻게 달래며 살아가야 하는가. 봄이야 간다고 해도 내년에 또 오지만, 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거늘 옛시조 식으로 그를 설워할 수밖에…….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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