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출신으로 소설가로도 활동했던 김준성 전 경제부총리가 쓴 소설 중 '돈 그리기'란 작품이 있다. 가난 탓에 여자를 떠나보낸 화가가 僞造紙幣(위조지폐)를 그려 황금주의에 물든 세상에 경종을 울리려 한다는 이야기다. 미친 듯이 돈을 그려 세상에 내보내는 주인공이 추구하는 돈의 이미지는 물질문명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돈, 인간에게 오직 기쁨과 행복만을 안겨주는 돈이다.
위조지폐의 역사는 잡초처럼 끈질기다. 중세 중국에서도 위조지폐가 너무 많아 나라에서 골머리를 앓았던 모양이다. 고민 끝에 내놓은 대책이 위조지폐범을 조폐기관 직원으로 특채하는 것이었다. 12세기 영국의 헨리 1세는 위폐가 성행하자 조폐기관 직원들이 위폐 제조에 가담했다고 의심하고, 직원 100여 명의 손목을 잘랐다.
위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독일의 히틀러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적국인 영국의 파운드화 위폐를 찍어내기 위해 베를린 근교에 위폐공장을 만들었다. 포로 중에서 인쇄 기술자를 뽑아 만들어낸 위폐는 매우 정교해 2년 넘게 아무 문제없이 통용됐다. 히틀러는 800만 장이 넘는 파운드화 위폐를 찍어냈고 결국, 영국은 새 도안의 파운드화를 발행해야 했다. 255번의 시도 끝에 미국 달러화를 찍어내는 데에도 성공했지만 히틀러의 죽음으로 실제 사용하지는 못했다.
기술 발전과 함께 위폐 역시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조폐 기술은 위폐범과의 두뇌싸움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거나 조폐 역사는 위폐범과의 투쟁의 역사라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초정밀 위조 100US달러인 '슈퍼노트(Supernote)'가 또다시 화제다.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오극렬 대장과 그 일가가 슈퍼노트 제작과 유통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미국 워싱턴타임스(WT)가 보도한 때문이다. 이와 달리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슈퍼노트는 전직 중국 군부 관료들이 사적 이익을 얻기 위해 중국에서 만든 것이라고 상반되게 보도했다. 슈퍼노트가 북한의 대표적 외화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지만 일각에선 강대국들의 정보 조작이란 주장도 있다. 위조지폐 생산 국가로 국제사회로부터 의심을 사는 북한을 보면서, 전 세계에 '한민족 디스카운트'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뒷맛이 씁쓰레하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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