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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서의 대중문화 일기] 존경과 동의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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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좌파 지식인으로서 현대 마르크시즘 정치사상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그람시는 '현대의 군주'라는 글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정치적 정당성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언급하며, 정치적 주체의 정당성을 '사목권력'에 있다고 했다. '사목권력'이란 목자에 비유된 권력 혹은 부모에 비유된 권력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권력의 힘이 백성들을 보살피고 이끄는 데에서 나오는 것임을 보이기 위한 말이다.

다분히 가부장적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는 표현이지만,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주장이다. 권력은 통제하고 억압하는 물리적 힘이 아니라, 보살핌과 모범됨을 통해 존경과 동의를 구함으로써 진정한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요점을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가장 효율적인 정치적 수단은 존경과 동의이며, 그것은 보살핌과 모범됨을 통해 얻어진다.'

맞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이어서 이걸 굳이 이론이라고 불러야 할지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라고 당연하게 실천에 옮겨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실은 모순되고 이론은 힘을 갖는다.

아무튼 현실의 정치는 존경과 동의를 갈망하면서도 보살핌과 모범됨은 안중에 없다. 그러므로 정치는 억지를 부리게 된다. 보살핌과 모범됨 없이 존경과 동의를 내놓으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핌 받지 못하고 모범을 찾지 못한 백성들이 존경과 동의를 내놓을 리 만무하다. 결국 정치는 존경과 동의의 환상을 창조하고 그 속에 스스로를 가둠으로써 국민을 벗어난다. 지독한 나르시시즘이 정치를 감싸고, 그 결과 정치는 시들고 나라 살림은 황폐해진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점에서 그 미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최근 대학과 종교계 그리고 각 사회단체들의 잇따른 목소리에 대응하는 이 정부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심히 걱정스러운 탓이다. 광우병 촛불에 명박산성을 세우고, 덕수궁 조문길에 전경 버스로 병풍을 둘러치더니, 이제는 서울대 교수가 모두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보살핌과 모범됨은커녕 눈과 귀를 막은 채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 바로 위에 더욱 기가 막힌 한 나라가 있지만, 당연 비교할 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 소리는 청담동 클럽 사진 몇 장으로 막을 수 있을 만한 건이 아니다. 청담동을 시작으로 대마초와 엑스터시에 연예인 몇 명을 잡아넣는다고 가려질 문제도 아니다.

북핵과 서해상의 긴장고조는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지만, 우리는 이미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윈도우즈 세대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덮을 수 없듯이, 후퇴한 민주주의 대한 실망을 안이한 정치적 책략으로 무마하려 해서는 곤란하다.

세상에는 좋은 나라도 없고 나쁜 나라도 없다. 마찬가지로 좋은 백성도 없고 나쁜 백성도 없다. 나라와 백성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도 없고 간직해야 할 의리도 없다. 이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백성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나라와 백성을 좋다 혹은 나쁘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1930년대 유럽의 인종적 민족주의와 같은 극단의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 좋거나 나쁜 것은 오직 권력뿐이다. 약속을 지키고 의리를 간직해야 할 것 또한 오직 권력뿐이다.

그것은 나라와 백성은 하늘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인간의 도리를 기대할 수 없듯이, 나라와 백성에게 권력의 도리를 바랄 수는 없다. 다만 하늘을 거슬러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게으른 농사꾼이 있듯이, 나라와 백성의 소리에 무감한 탓으로 정치를 망치는 나쁜 권력이 있을 뿐이다.

'대중문화일기'라는 제목에 꼭 맞는 이야기를 하지 못해 독자들에게 죄송스럽다. 하지만 대중문화 또한 우리의 정치적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니기에, 너그럽게 해량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주제를 벗어난 소리는 이제 자제하리라 약속드린다.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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