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낙동강은 흐른다

"전 전선을 낙동강으로 수습하여 결전 방어로 돌입한다. Stand or die!"(월턴 워커), "나는 여기 낙동강 전선에 역사적인 이미지를 남기고자 합니다. 즉 공산군을 막아낸 방어전의 전선으로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결집력으로서 공산침략군을 섬멸해 나가는 반공의 출발선으로서 역사에 장식하려는 것입니다."(더글러스 맥아더''정일권 회고록'에서)

1950년 6'25전쟁 발발과 함께 공산군의 파죽지세로 전선은 대전까지 후퇴했다. 風前燈火(풍전등화)의 국가운명은 이제 洛東江(낙동강) 전선의 사수 여부에 달렸다. 이때 맥아더 주한 UN군 사령관은 낙동강 사수결의를 이같이 다졌다. 또 대구 주둔 美(미) 제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은 'Stand or die!'라는 이름의 낙동강 전선 사수를 위한 작전 1호를 내리고 결전을 준비했다. 70세(맥아더)와 61세(워커)라는 것은 물리적 나이에 불과했다. 1950년 8월부터 45일간의 낙동강 전투에서 승리를 발판으로 맥아더 장군은 그해 9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이를 말렸던 미국 워싱턴 정부를 놀라게 했다.

장군은 상륙작전에 앞서 "워싱턴이 이 작전을 '5천분의 1'의 도박으로 간주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본인의 결의는 확고하다. 기필코 결행해 보일 것이다. 그리고 5천의 불가능보다 1의 가능성을 어디까지나 믿고 있다"며 워싱턴의 미 정부를 설득, 작전을 감행해 성공시켰다.

영남의 젖줄이자 생명의 강으로 상주의 옛 지명인 上洛(상락) 혹은 洛陽(낙양)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하는 낙동강. 이 강을 따라 비옥한 토지가 이어져 일찍이 농업이 발달했고 낙동강 뱃길로 소금이나 해산물, 농산물 등을 사고파는 商船(상선)들도 드나들었다. 물론 옛날 대구 안동 선산 등지에서 노략질을 한 역사서 속의 倭寇(왜구'일본해적)들 역시 이 낙동강 물길을 따라왔을 터. 낙동강은 또 근대화의 상징이자 초석이 된 구미공단을 탄생시켰다.

역사의 영광과 굴곡을 간직한 낙동강의 모습이 바뀔 것 같다. 정부는 8일 10조 원 가까운 사업비가 투입되는 낙동강 살리기 마스터 플랜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경북도와 낙동강을 낀 안동'고령에서도 낙동강을 녹색성장의 축으로 삼으려는 다양한 사업과 행사들이 선보였다. 16일 상주에선 낙동강 천년비전 선포식이 열린다. 1천300리길 강물에 새겨질 낙동강의 새 역사가 궁금하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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