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독도](67)역사⑨-日 명치정부의 인식

"독도, 일본과 무관" 각종 문서 명기

독도에는 때로는 유류 운반선이 접안하지 못해 동·서도 사이를 모터보트로 건너다니며 발전용 유류를 실어 나르기도 한다.
독도에는 때로는 유류 운반선이 접안하지 못해 동·서도 사이를 모터보트로 건너다니며 발전용 유류를 실어 나르기도 한다.

역사에서 진실이 통하지 않을 때 그 사태를 설명하기란 참으로 막막하고 참담하다. 과거 일본은 독도를 두고 '예로부터 일본의 땅이었다'고 주장하다가, 최근 들어서는 '1905년 이후 주인 없는 섬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과거부터 독도가 일본땅이란 근거가 미약하자, 최근에는 소위 '무주지선점론(無主地先占論)'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일본은 명치 정부를 수립한 이듬해 1869년(고종 6년) 조선의 사정을 내탐하기 위하여 좌전백모(佐田白茅) 등의 고위 관원을 부산에 파견한다. 이때 업무를 맡은 일본 외무성은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 부속으로 되어있는 시말(始末)'을 넣어 조사할 것인가를 국가 최고기관인 태정관(太政官)에게 결정해줄 것을 청한다.

태정관은 조사를 지시하고 좌전백모 등은 조선 사정을 내탐하여 1870년에 복명서를 제출했다. 이 건은 송도는 죽도의 인도(隣島)로서, 송도의 건에 부(付)해서는 이제까지 게재된 서류(書留)도 없다. 죽도의 건에 대해서는 원록도후(元祿度後) 잠시 동안 조선으로부터 거류(居留)를 위해 차견(差遣)한 바 있다. 당시는 이전과 같이 무인(無人)으로 되어 있다.(일본외교문서)

문건의 기록과 같이, 일본 외무성과 태정관은 이미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조선 영토로 주인 없는 섬이 아니며, 독도는 울릉도의 인접 섬으로서 부속도서로, 일본 영토와 상관없음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다.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일본 내의 문서는 '내탐서(內探書)'뿐만이 아니다. 당시 일본 내무성의 독도 관련 문의 처리공문에서도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음'을 행정관청마다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1876년 일본 내무성은 국토 지적(地籍)조사와 지도편제 사업을 하면서 시마네현(島根縣)으로부터 '죽도와 송도를 시마네현의 지도와 지적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여부를 질의 받았다. 검토에 나선 내무성은 '안용복 사건' 당시 조선과의 관계문서들을 조사한 결과 죽도와 송도는 조선의 영토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판도(版圖)의 취사(取捨)는 중대한 사건'이므로, 이 결론을 다시 태정관의 결정을 받기 위해 1877년 질품서(質稟書)를 태정관에 제출한다. 태정관 역시 지령안(指令按)을 내려 '품의한 취지의 죽도외일도(竹島外一島)의 건에 대하여 본방(本邦·일본)은 관계가 무(無)하다는 것을 심득(心得)할 것'이라고 못 박는다.

이로써 시마네현의 지도와 지적조사에 울릉도·독도를 포함시키지 말라는 내용의 문건이 1877년 4월 9일자로 시마네현에 송달되었다. 명치정부 당시 일본은 울릉도는 물론 독도 역시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군부에서도 독도는 조선 땅임을 지도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일본 육군성 참모국이 1875년에 편찬한 '조선전도(朝鮮全圖)'를 보면 울릉도와 송도를 지도의 오른쪽 선 밖으로 넓혀, 지도 도판형태까지 변형하여, 조선영토에 명기해 넣고 있다. 일본 해군성 역시 1876년 당시 독도가 조선 땅임을 지도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해군성 수로국은 러시아와 영국 군함들과 측량한 지도들들 종합하여 '조선동해안도'를 편찬했는데 여기에서도 독도를 조선 영토로 적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지도에서는 러시아 군함이 독도 3.5마일 정북 방향에서 그린 그림과 북서 10도 5마일 거리에서 그린 그림, 북서 61도 14마일 거리에서 그린 그림 3점을 사진처럼 지도 오른쪽 하단에 실어 영토 경계를 명확히 했다. 해군성 수로국의 '조선동해안도'는 재판(再版)을 비롯하여 1905년까지 독도를 조선의 땅으로 기록하고 있다.(신용하 저 '한국의 독도영유권 연구')

그러나 1876년 무등평효(武藤平孝)란 일본인이 동해 한가운데서 큰 섬을 발견했다고 개척을 신청한 일이 발생한다. 이에 해군성은 1880년 측량선을 보내 확인한 결과, 그 섬이 송도(독도)임이 밝혀져 실측 내용을 '조선동해안약기'에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때부터 송도(독도)를 '리앙꾸르도'로 고쳐 부르기 시작하면서 제국주의의 발호라는 세계질서의 재편 시기를 맞아 독도 침탈을 꾀하게 된다. 일본, 그들의 무주지선점론도 이렇듯 허구인데, 최근 들어 억지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이런 상황에도 맞대거리 해야 한다는 것이 참담하다. 역사에서 진실과 논리를 도외시하는 일본이 또다시 앞으로 어떤 엉뚱한 소리를 할지….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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