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고속도로를 달리다 서쪽 바다 넘어 붉게 지는 석양을 보고 모두가 창밖을 내다보며 함성을 지른다. '와~! 멋지다!!' 매년 1월 1일 신년 아침이면 많은 사람들은 바다, 산 정상 등으로 가서 동쪽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새해의 첫 해를 보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시간씩 밤길을 달려간다. 그리고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날이 오면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도 해동이 되어 몸짓도 가벼워지고, 파릇파릇 새싹이 여기저기에서 돋아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새로운 꿈과 희망을 다시 설계해 본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젊은층을 '명품' '인기 상품', 나이가 많은 층은 '세일 품목' '창고 처리'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최고급 자동차도 한 달만 타면 중고차가 되어 값이 뚝 떨어지고 전자제품은 구입한 지 몇 개월이 되지 않아도 금방 구형이 되는 것을 자주 본다. 이렇게 우리는 저녁보다는 아침, 겨울보다는 봄, 헌것보다는 새것, 나이 많은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을 선호한다.
어린 시절 얼른 서른살이 되길 손꼽아 기다린 적이 있다. 그래서 만 서른이 되던 날에는 철없이 동네방네 광고하며 생일잔치를 한 기억이 난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겐 철부지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한때는 시끌벅적한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기도 좋아했다. 그때는 그런 것이 멋있어 보였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은 까마득한 옛 추억이 되고 요즘 젊은 세대들의 노래는 아예 따라 부르지도 못하고 흘러간 옛 노래만 찾는다. 드문드문 고상하게만 생각했던 새치도 이젠 내 머리 전체를 완전 점령해버려 2개월에 한번 정도 미용실에 들러야만 지금의 내 모습이 유지된다.
육십이라는 나이를 향해 인정사정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 시간이 원망스러운 요즈음 곱게 화장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젊은 후배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70, 80대가 유독 내 눈에 띈다. 빠른 걸음은 아니지만 연륜으로 가득한 당당함과 느긋한 여유로움은 젊은이들을 단숨에 장악해버린다. 그동안 허울에 가려 보이지 않던 고귀한 미(美)가 하나 둘씩 내 눈 깊숙이 스며들면서 완숙의 길로 접어서는 것 같다.
창밖의 싱그런 녹음과 함께 갖가지 눈부신 빛으로 서쪽 하늘을 물들이며 지평선 넘어 서서히 지는 석양을 보면서 눈가가 젖는다. 동쪽 바다에 붉게 떠오르는 태양 못지않게 저 산 너머 고요하게 지는 해도 아름다운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최윤희(전문직여성한국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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