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마음이 왠지 안정되지 못해 허공에 떠있는 것 같고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다. 머지않아 좋지 않은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데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진 듯하다. 가슴은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신기하게도 이런 느낌은 우리가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도망할 때 겪는 것과 아주 닮았다. 그렇다면 불안은 우리를 위기에서 구출해 주는 기능이 있지 않을까?
먼 옛날 인류가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야수들과 함께 지냈던 시절, 겁없이 들판을 쏘다니던 사람들보다는 조심조심하는 사람들이 사자나 호랑이의 주둥이로부터 자신을 더 잘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수험생이 유유자적하는 사람보다 더 나은 성적을 얻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준비를 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불안이 불쾌한 경험이긴 하지만 경쟁과 적의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는데 필수적인 자구책이라는 지적은 백번 옳다.
인류는 자구책인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과 장치를 수없이 개발해 두었다. 미지의 상황이나 불확실한 미래는 항상 불안의 진원이다. 그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미리미리 준비를 서두르게 한다. 불안장애를 비롯한 갖가지 정신질환에서부터 뇌졸중과 같은 대뇌 질병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신경·정신질환에서는 불안이 초기 증상이다. 이때 병이 왔다는 것을 알아채고 대처하는 것이 상책이다. 신체 질환에서도 뭔지 모르지만 몸 어딘가가 편찮다는 막연한 불편감과 걱정이 초기 증상인 경우가 많다. 병이 나빠질 때도 마찬가지이다. 당뇨병 환자라면 저혈당에 빠지기 시작할 때 경험하는 발한과 불안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빨리 혈당을 보충하라는 신호이다.
뇌는 불안에 어떤 역할을 할까? 혹자들은 카페인이 든 커피를 꺼린다. 마시고 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평정심을 잃으며,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는 등 전형적인 불안 증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안이 대뇌 안의 중뇌-변연계의 도파민 활성과 유관하다는 증거이다. 요힘빈이나 이소프로테레놀과 같은 약물은 노르아드레날린계의 기능을 북돋워서 불안을 만든다. 불안을 치료하는 약물들은 하나같이 신경자극전달을 억제하는 물질의 활동을 조장한다. 불안은 신경자극 전달이 흘러넘치는 상태라는 말이다. 인간의 원초적 감정이라 할 만한 불안도 신경과학의 입장에서는 이 밖에도 할 말이 참 많다.
박종한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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