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다. 비릿한 강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온다. 동쪽을 등지고 페달을 밟는다. 곧 아침 해가 떠오를 것이다. 해바라기가 길 양 옆으로 열병하듯 늘어섰다. 해를 맞이하려는 마음인듯 모두 한 방향을 향한다. 서변대교에서 팔달교 쪽으로 달린다. 그곳에서 다시 방향을 틀어 검단동까지 갈 작정이다. 평평하게 닦은 4~5m 폭의 흙길이 10㎞ 이어진다. 이른 시간인데도 걷고, 달리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으로 강변길은 분주하다. 자전거 타기에 더할 나위 없는 길이다. 이 길을 처음 발견했을 때 얼마나 흥분했던가. 이런 좋은 길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걷든 자전거를 타든, 이 길 위에 있을 때는 행복하다.
요즘 나는 자전거에 푹 빠졌다. 시간 나는 대로 금호강변 자전거 도로를 달린다. 가족들은 자전거 타러 가는 내 모습이 어린아이 같다고 한다. 지금 자전거 열풍이 불고 있다. 각종 미디어는 대중에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라며 야단이다. 지자체들의 자전거 정책은 화려하다. 자전거가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듯이 건강, 교통, 환경 등 사회 문제를 단참에 해결해 줄 것같이 말한다. 하지만, 내가 자전거에 빠진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친환경이니 녹색이니 하는 이념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자전거를 타고 길 위를 달리는 자체가 좋을 뿐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내 몸이 대지의 공기와 소리와 풍경을 만나는 그것이 즐겁다. 드넓은 우주 가운데에서 내 몸이 차지한 공간을 작지만 생생하게 확인하기 때문이다.
시속 100㎞ 이상으로 질주하는 차를 운전하면서 차창 밖의 경치에 눈 돌리기는 어렵다. 느긋하게 경치를 마음에 담으려다가는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시간은 공간을 살해하고 빨아들여 녹이는 블랙홀과 같다. 공간 접촉에서 인간 삶의 구체성이 생성된다. 생명의 증표이기도 한 모든 감각의 근원은 공간에 자리 잡은 구체적인 사물이다. 그러니 속도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이, 공간은 가역적이어서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 반면에 시간은 비가역적이어서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은 신비하지만 비인간적이고, 욕망의 원천이기도 하다. 느리기 때문에 자전거는 한 공간에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주변의 타자와 관계를 맺을 기회가 많다. 자동차의 쾌속에서는 나를 위한 이기심이 발동된다면, 자전거에서는 타자를 배려하는 여유가 생겨난다.
어둠이 짙게 깔린다. 그래도 자전거 타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초승달이 북서쪽 낮은 하늘에 걸려 있다.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도시에서 발사되는 불빛들이 멀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어둠과 밤의 정취에 젖어본다. 빨리 달릴 수는 없으나 마음이 급하지 않다. 젊은 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는 것이 인생을 성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자랑으로 삼기도 했다.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주위를 돌아보지 못했던 삭막함에 몸서리쳐진다.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하고 깨닫는다. 빨리 달리고서는 풍경을 마음에 담을 수 없음을. 경관이 풍경이 되려면 내면의 심미적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 즉, 내 안과 밖이 서로 교감을 이루어야 한다. 그 교감을 통해 얻는 풍성한 풍경들이 내 삶의 속살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자전거가 느림의 가치를 깨우쳐 준다는 것,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자동차에 길들여진 현대인이 자전거를 가까이하는 것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코드의 변화임에 틀림없다. 현대 기계문명에 대한 비판이란 점에서 건강하다. 그런데 자전거 타기는 철학적 명상보다는 현실 생활과 더 가깝다. 원래 자전거는 공간 이동의 편리를 도모하려고 고안된 도구가 아니던가. 도구는 효용성의 원리에 지배된다. 효용성, 그것은 거침없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몇 백만 원으로부터 천만 원이 넘는 자전거가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욕망의 불순함이 아닌가.
금호강변 자전거 도로 양옆의 신천대로와 경부고속도로에는 수많은 차들이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그 사이 금호강은 주위 속도를 의식하지 않고 천천히 흘러간다. 비가 온 뒤라 수량도 넉넉하다. 자전거를 타고 금호강변을 지나노라면 느려도 조급해 하지 않는 작은 여유를 배운다. 풍경을 마음에 담는 나의 자전거 타기가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신재기(문학평론가.경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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