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여인, 자유주의자 쇼팽의 연인 조르주 상드
7월 1일은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연인으로 알려진 조르주 상드(1804~1876)가 지금부터 105년 전에 파리에서 태어난 날이다. 본명이 오로르 뒤팽(Aurore Dupin)인 조르주 상드는 아직은 봉건주의적이고 폐쇄적이었던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지방 귀족 출신이었던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는, 오늘날의 '이혼'(당시엔 합법적인 이혼 사례가 거의 없었기에 일종의 '별거-헤어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에 해당하는 결별을 단행했던 강단 있는 여인이었다.
이후 1831년 젊은 천재지만 충동적이고 예민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알프레드 뮈세(1810~1857)와 열렬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이때 뮈세의 나이 23세였고 상드는 27세였다. 이미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고 여성의 자유연애주의를 옹호하는 내용의 파격적인 소설을 발표하면서 파리 사교계의 '스캔들 메이커'로 유명해져 있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여행은 두 사람을 더욱 묶어주기보다는 또 다른 사랑의 만남으로 헤어지게 만들고 만다. 이 두 연인의 사랑은 뮈세에게는 '세기아의 고백'으로, 조르주 상드에게는 '그 여자와 그 남자'라는 책으로 남은 채 아쉽고 불행한 결별로 끝을 맺는다.
뮈세 이후에도 조르주 상드는 대부분 자신을 매혹시킨 남자와 불 같은 사랑을 시작해 오랜 동거 생활을 거치면서 열정이 모성애와 일종의 우정으로 변해 상대편 남자의 재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돌봐주는 이상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피아노의 시인 쇼팽과의 만남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쇼팽은 나이 26세 때인 1836년 여섯살 연상의 조르주 상드를 만나면서 파리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사랑 역시 당시 파리 사교계의 대단한 스캔들이 되었고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스페인 마요르카 섬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뮈세와의 경우와는 달랐다.
여행의 피로와 그때까지의 스트레스로 병이 난 쇼팽이 결국 폐결핵을 앓게 되지만 조르주 상드는 쇼팽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진심으로 간호해 쇼팽이 병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아닐는지….
남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이미 여러 번의 연애사건으로 파리 사교계의 '기인'으로 여겨지던 조르주 상드는 내성적이면서 섬세한 성격으로 파리 생활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던 쇼팽이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작곡과 연주 활동에 임할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때로는 엄마처럼 더러는 누나처럼, 그리고 열정적인 연인으로…. 이때부터 약 10여년 동안 쇼팽은 많은 명곡을 남기게 되는데, 당시에 쓰여진 작품으로 op. 28 24개의 전주곡(이 중에 15번이 Db 장조 '빗방울') 그리고 대부분의 마주르카와 녹턴이 포함된다.
오늘날 관점으로 보자면 조르주 상드는 자유연애주의자이자, 여성해방운동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조르주 상드가 자신의 성격과 운명을 억눌러 당시 사회가 원하는 대로 숨죽이고 참고 사는 여인이었다면 오늘날 뮈세나 쇼팽과 같은 위대한 예술가가 빛을 발할 수 있었을까.
음악칼럼니스·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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