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유머] 相悅之詞(상열지사)(2)

"저∼ 형님이 또 죽었어요…" 형수님의 애절한 목소리

글줄이나 한다는 선비 다섯이 기생들을 데리고 야유회를 나갔다. 술이 거나하게 오르자 누군가가 '소리'에 대한 의견을 나누어보자고 했다. '최고의 소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을 펼쳐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선비가 "달빛 교교한 밤, 다락 위로 구름 지나가는 소리가 최고"라고 하자, 다른 선비가 "滿山紅葉(만산홍엽)에 가을바람 스치는 소리가 최고"라고 했다. 또 한 선비는 "이른 새벽 잠결에 들려오는 술 거르는 소리가 제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은근한 미소만 짓고 있던 한 선비가 기생을 넌지시 바라보며 하는 말이 "뭐니 뭐니 해도 洞房華燭(동방화촉) 애틋한 밤에 여인의 치마끈 푸는 소리가 최고 아닌가…!"였다.

그 다음에는 '방아' 중에 최고가 무엇인가로 화제가 넘어갔다. 한 선비가 "오뉴월 저녁나절 아낙네들의 떡방아 찧는 모습이 가장 넉넉하지"라고 하자, 다른 한 선비는 "소쩍새 우는 밤 마을 어귀에서 들려오는 물레방아 장단이 가장 정겹다"고 했다.

한데 '치마끈 푸는 소리가 최고'라고 했던 선비가 빙그레 웃으면서 던지는 방아타령에 나머지 선비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방아로 말하자면, 月沈沈夜三更(월침침야삼경)에 홀로 찧는 가죽방아가 최고 아닌가…!"

충청도의 어느 시골 마을에 청상과부가 살았다. 스물여섯 한창 나이에, 그것도 남정네의 품을 익히 알고 있는 여인의 守節(수절)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춘삼월 호시절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춘정이 못내 겨운데, 건넛마을 노총각은 눈치가 없는 것인지 과부의 은근한 눈길을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

그러던 어느 날 나물을 뜯으러 갔던 과부와 노총각이 인적 없는 산속에서 우연히 만났다. 드러내놓고 표현은 못했지만 서로가 교감은 있었던지라 너럭바위 위에서 두 남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열지사에 빠져들었다.

한바탕 雲雨之情(운우지정)이 끝나고 나자 여인을 처음 경험했던 노총각은 기진맥진해서 바지춤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바위 위에 널브러졌는데, 과부는 千載一遇(천재일우)의 情事(정사)가 아쉽기만 했다. 옆산 뻐꾸기는 저리도 밭은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데….

역시 알몸으로 누워있는 과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살그머니 총각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총각의 대답이 참 궁색하다. "아이~참! 안즉 다 마르지도 않았는디…" 과부가 잠시 더 기다리다가 다시 총각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하는 말이 "지는 다 말랐는디유…"였다. 여기서 채근하는 과부에 대한 노총각의 응답이 걸작이다. "아따 참! 통째로 말리는 거 하고 쪼개서 말리는 게 워디 똑같은겨~?"

과부타령을 하나 더 한다. 여성이 한창 무르익을 나이인 40대 초반에 과부가 된 형수가 안타까워 시동생이 외국에 나갔다 오는 길에 소위 '성인용품'이란 것을 하나 사왔다. 얼굴을 붉히는 형수에게 시동생은 사용법을 알려주며 일주일에 두번 이상 무리하게 사용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풀벌레 소리 처량한 긴 가을밤, 남편의 빈자리가 너무도 컸던 과부는 그 '요상한' 물건을 너무 애용하다가 보름도 되기 전에 그만 고장을 내고 말았다. 자중하며 사용하라고 그렇게 충고하던 시동생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저~ 형님이 또 죽었어요…!"

樂而不淫(낙이불음·즐기되 지나치지 말 것)이라고 했거늘, 만사 그렇듯이 상열지사 또한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다. 그런데도 남녀간의 相悅之心(상열지심)이란 때와 장소 그리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자꾸만 生動(생동)하려는 게 문제이다.

하물며 짝 잃은 외기러기의 심사야 오죽하겠는가. 겪어보지 않고서야 춘하추동 그 애타는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이렇게 우스갯소리라도 늘어놓으면 담장 너머로 치닫는 相悅之客(상열지객)들의 정념을 조금은 붙잡아 둘 수 있을까.

月樓秋盡玉屛空(달빛 가득한 다락에 가을이 한창인데 고운 병풍은 쓸쓸히 비어있네) 霜打蘆洲下暮鴻(서리 내린 갈대밭엔 저녁 기러기 내려앉건만) 瑤瑟一彈人不見(아름다운 거문고 가락에도 들어줄 임이 없으니) 藕花零落野塘中(버려진 연못에 연꽃이 절로 시들어 떨어지네). 조선시대가 낳고 앗아간 비운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閨怨(규원)이다. 아! 속절없이 이지러진 청춘이여…. 小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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