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이 치열한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
고도(古都), 역사문화도시 경쟁도 그 중의 하나다.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 수에서도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압도하고 있다. 중국은 전 대륙에 걸쳐 산재한 풍부한 역사유적을 바탕으로 문화강국을 지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 성정부 등 지방정부도 발빠르게 고도의 품격을 높이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역시 일찌감치 문화유산 보존 정책을 확립, 교토와 나라 등을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문화도시 육성정책을 펼 수 있는 '고도보존법'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시안(西安)과 산시성(山西省) 핑야오(平遙)고성, 교토(京都), 나라(奈良) 등 중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문화도시를 직접 찾아 한중일 3국의 고도 보존과 육성정책 및 관광산업의 현재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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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1. 대당제국 부활 꿈꾸는 시안
#1
지난 6월 13일 오후 1시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에서 35km 떨어진 진시황 병마용(兵馬俑) 1호갱에서는 발굴 작업이 재개됐다. 수십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굴단은 발굴 작업 재개를 선언했다.
1985년 출토된 유물의 변색 등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자 발굴 작업을 중단한 지 24년 만이다. 발굴 과정은 고스란히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됐다. 박물관 측이 관람을 중단하지 않고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도 1호갱 내부에 전시된 병마용들과 발굴 작업을 함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1호갱 발굴 작업은 앞으로 6개월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발굴 첫날인 이날 나란히 매장돼 있는 4두 전차 2대를 비롯해 채색 병사용 2점과 칠기 등이 발굴됐다. 발굴 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차오웨이(曹瑋) 병마용박물관 부관장은 "발굴 첫날부터 엄청난 가치를 가진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내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그동안 단 6개밖에 발굴되지 않았던 채색 병마용의 발굴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산시성 시안의 진시황 병마용갱은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이다. 병마용갱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자신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흙으로 빚은 병사와 말 등을 배치시켜 둔 곳으로 1호갱에만 6천여개에 이르는 병마가 있다.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피라미드를 보지 않고서 이집트를 보았다고 할 수 없듯이 병마용을 보지 않고는 진정한 중국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며 병마용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산시성 문화재 당국이 발굴 기술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국가급 중점 문화재'인 병마용 발굴 작업 재개에 나서면서 발굴 과정을 일반인들에게까지 그대로 공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병마용갱 발굴 작업 자체를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로 제공하는 이벤트로 만들겠다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안시는 올초 시안에서 병마용갱으로 연결되는 지하철 건설 계획까지 발표했다. 지하철이 완공되는 4년 후인 2013년에는 시안에서 지하철을 이용, 병마용갱에 갈 수 있게 된다. 이는 지금도 연간 75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고 있는 병마용 관광을 촉진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2.
산시성 시안이 대당(大唐)제국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시안은 진(秦)을 비롯해 서주(西周)와 서한(西漢) 수(隋) 당(唐) 등 중국 역사를 거쳐간 13개 왕조의 수도로서 1천년 이상 수도의 위상을 이어 온 천년고도(千年古都)다. 또한 실크로드의 기점으로서 동서양 문물 교류의 통로였다.
시안 시내 곳곳은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역사 유적들로 가득하다. 시 외곽에 위치한 진시황릉과 병마용, 화청지는 물론이고 완벽한 형태로 보존돼 있는 명대(明代) 성벽과 종루(鐘樓) 고루(鼓樓) 비림(碑林) 대안탑(大雁塔) 대당부용원(大唐芙蓉園) 등 시안은 시가지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의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문화도시다.
시안의 부활을 위한 야심 찬 '따탕(大唐) 프로젝트'는 당나라 시대의 황궁이었던 ▷따밍궁(大明宮) 복원 사업과 ▷시 중심가인 시따제(西大街) 개발 ▷황족들의 화원인 취장(曲江) 신구 개발 ▷당나라 시대의 건축물과 각종 문화를 되살린 주제 공원 '대당부용원' ▷비린(碑林)구 주변의 전통 가옥 복원과 명대 성벽의 유적 공원 조성 사업 ▷병마용 재발굴 등으로 다양하지만 대당제국의 영화를 재현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산시성 여유국(旅遊局·여행국)의 천칭량 부국장은 "당나라 역사와 문화의 영향이 지금까지 미치고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당나라 문화 중심의 여행 상품 개발과 문화 산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밍궁 복원 사업은 무려 20조원의 외자를 유치, 당나라 황궁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규모 문화 유적 복원 프로젝트다. 이미 산시성과 시안시는 '따밍궁츠'(大明宮詞)라는 역사 드라마 제작을 통해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였던 무후측천 시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대명궁 복원에 앞선 첫번째 '따탕 프로젝트'는 '따탕푸롱위엔'(大唐芙蓉園) 건설이었다. 지난 2005년 개장한 따탕푸롱위엔은 허난성(河南) 카이펑(開封)에 조성된 송나라 주제공원 '칭밍상허위엔'(淸明上河園)같이 당나라 주제공원이다. 따탕푸롱위엔은 원래 당 현종의 궁원(宮苑)이던 푸롱위엔(芙蓉苑)자리에 66ha(약 19만9천600평)의 광대한 면적으로 2천500억원을 들여 건설됐다. 따탕푸롱위엔은 특히 호수에서 펼쳐지는 불꽃 분수와 화려한 야경으로 당나라 시대의 영화를 표현하고 있다.
시안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종루에서 시따제로 이어지는 가로변의 대형 건물들도 모두 당나라 양식으로 리모델링 됐다. 600년이 지난 시안의 성벽도 역사문화도시 시안의 품격을 한껏 높이고 있다. 시안시 당국은 성벽의 남문 주변에 있는 비린구(碑林區)의 건물을 모두 당나라 양식으로 재개발에 나서는 등 당나라 시대로 꾸미고 있다.
#3 중국의 역사문화도시(古都)정책
중국은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풍부한 역사 유적과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역사 유적 보호 및 보존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직후인 1949년 '문화유물보호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국가급 중점 문화재는 1961년 국가중점문화유물유적지를 처음으로 지정·공포하기 시작한 이래로, 2003년까지 총 5차례에 걸쳐 1천271곳이 지정됐다.
시안(西安)과 베이징(北京) 같은 도시가 '역사문화도시'로 지정돼 보호받고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82년부터였다. 1981년 중국 국가기본건설위원회와 국가문화유물사업관리국, 국가도시건설총국이 국무원에 '역사문화유명도시를 보호하기 위한 지시사항'을 요구하자 1982년 1차로 베이징과 난징(南京), 뤄양(洛陽) 등 24개 도시가 '중국역사문화도시'(歷史文化名城)로 지정됐다. 3차례에 걸쳐 국가급 역사문화도시로 지정된 곳은 99곳에 이른다.
이들 역사문화도시는 시안 뤄양 등과 같은 '고도(古都)형'과 핑야오(平遙) 리장(麗江) 등과 같은 '전통 도시형', 구이린(桂林) 등의 '명승지형', 상하이(上海) 충칭(重慶) 등과 같은 근현대 '역사 유적지형'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국가급 '역사문화도시'로 지정되면 도시 계획을 국가에 제출, 승인을 받아야 하고 국가는 문화유적 등의 보존 계획에 대해 ▷도시 계획의 다른 분야와의 협조 ▷토지 이용과 도로 정비 ▷공업 조정, 특히 오염원이 되는 공장의 이전이나 공장 설립 금지 등의 산업 계획 ▷관광사업의 발전 계획 ▷보존 대상 문화재의 등급 구분 ▷주변 건물의 높이와 색채, 양식의 제한 ▷문화재의 보호와 복원 주변 환경보전 등에 대해 정밀한 조사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특히 역사문화도시는 국가와 지방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각종 보존 및 개발 계획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국가는 물론 각 성(省)과 자치정부가 앞다퉈 역사문화도시로 지정·개발하면서 적잖은 문제점이 노출되기도 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충분한 사료의 바탕없이 무분별한 '복원' 작업을 추진, '가짜' 고대 건축물을 양산하는가 하면 심지어 현존하는 고대 건축물을 허무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 정부가 지나치게 관광산업과 연계시키면서 보호해야 할 문화재의 가치가 관광수입에 따라 달라지면서 관광수입이 거의 없을 경우 보호를 받지 못하고 매몰당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글·사진 중국 시안에서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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