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문의 길은 선비의 길" 100세 퇴계 종손 이동은옹

"신문은 올곧게 가면서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7일 만 100세를 맞은 퇴계 이황의 15대 종손 이동은(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옹은 창간 63주년을 맞은 매일신문에 "유교의 본향인 대구경북의 대변지답게 '정도'(正道)를 가면서 '중용'(中庸)에 유의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올바르지 못한 데 대한 꾸짖음과 참된 방향을 제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선비정신과 유학의 가르침도 같다. 100년 전인 1909년 7월 7일(음력 5월 20일) 안동 토계마을에서 태어난 이옹은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니며 신학문을 익힌 1년 남짓을 제외하고는 지금껏 고향을 지켜오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백성으로 비운의 삶을 살아야 했지만 조상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는 가문의 뜻을 받들어 한 세기 동안 '종손'이라는 막중한 삶의 궤적을 보듬어 온 것이다. "왜놈에게 무엇을 배우려 하느냐"는 집안의 불호령이 성리학을 익히며 지금껏 종가를 지켜온 동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옹은 1970년대 중반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퇴계 집안의 맏종손으로 종가의 기둥 역할을 맡게됐다. 종손으로서의 그의 삶은 한마디로 유가의 가르침인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과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에 대한 한치의 소홀함도 없는 실천이었다.

하루의 일상은 이른 아침 의관을 갖추고 종택 뒤편에 모신 사당에 참배하는 일로 시작한다. '종갓집 1년은 제사로 시작해 제사로 끝난다'는 말처럼 퇴계 종가에는 1년에 20차례의 제사가 있고, 제사 때마다 200여명의 손님을 맞아야 했다.

이옹은 그 세월동안 종가의 대소사를 맡아 함께 고생했던 아내와 큰며느리를 10여년 전에 차례로 떠나 보냈다. 그러다 2년여 전에는 17대 종손 치억씨의 혼례와 함께 신세대 종부를 맞이하는 집안의 경사도 지켜봤다.

이옹은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였던 퇴계 집안의 종손이지만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지난해 서울 운현궁에서 열린 안동 전통한복 패션쇼에 손자 부부가 모델로 나서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으며 집안의 납골당 조성도 반대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17대 종손 치억씨가 제사 혁신과 시대적 흐름에 맞춘 종가 운영을 밝혔을 때도 공감을 나타냈다. 이옹은 3년전 전립선 수술을 받은 후유증으로 기력이 급속도로 쇠진해졌지만 유가의 예를 지키고 종가 종손의 소임을 다해왔던 정신과 기개는 여전하다.

이 옹의 아들 근필(77·16대 종손)씨는 "과거 벼슬길에 나서기 보다는 후학을 가르치며 사회를 지탱했던 선비들의 삶이야말로 오늘날 신문의 역할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종가를 지키고 조상을 모시는 일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오신 어른의 건강을 기원한다"고 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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