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인물] 중세 종교개혁가 장 칼뱅

"내 무덤에 묘비를 세우지 말고 내 무덤의 흔적이 없도록 해 달라."

1509년 오늘 프랑스에서 태어난 장 칼뱅은 55세로 생을 마감하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그의 무덤에는 'J. C'란 약자만 새겨져 있다. 그는 사제를 지망하기 위해 신학과 스콜라 철학을 공부했지만, 아버지의 뜻을 좇아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미사를 폐지하고, 예배를 설교중심으로 바꿨다. 교회 안에 목사, 교사, 장로, 집사 등 4개의 직무를 정했고, 목사와 장로 위주로 교회를 운영토록 했다. '종교 개혁가'로 꼽히는 그는 이후 프랑스 위그노파, 네덜란드 고이센파, 스코틀랜드 장로파, 잉글랜드 청교도 등 종파를 잉태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돌연한 복음주의(프로테스탄트주의) 입장을 명확히 함에 따라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이단에 대한 박해의 대상이 됐다. 그는 스위스 바젤로 몸을 피했다. 신권(神權)정치를 바탕으로 한 엄격한 종교개혁을 추진하려고 했기 때문에 스위스에서 다시 프랑스로 추방됐다. '그리스도교 강요'(1536)에는 그의 프로테스탄트주의의 입장이 담겼다. 개혁은 늘 박해받을 수 있다.

김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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