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 민족 고유의 맛과 멋이 있다. 대를 이어 전해오는 우리 음식, 바람과 햇살의 향기를 담았다. 산과 강, 대지의 기운을 안았다'
1670년경 영양 석보 두들마을에는 음식에 담긴 '정'(情)과 '경'(敬), 건강 철학을 후세에 전하려 했던 여성군자가 살았다. 일흔이 넘어 침침해진 눈으로 조리법을 또박또박 써내려갔던 정부인 장씨(1598~1680)의 '음식디미방'에는 우리 전통음식의 맛과 멋, 그리고 자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씨는 책 말미에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되 가져갈 생각일랑은 마음도 먹지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라'고 훼손과 분실을 경계하며, 자자손손 가문의 전통을 후세에 전하고 싶은 마음을 오롯이 담았다.
340여년 세월이 지난 지금, 정부인 장씨의 음식이 되살아나고 있다. 맵고 짜고 달고 강한 맛에만 길들여진 입맛을 옛 우리의 입맛으로 되돌려 놓고 있다. 영양의 빼어난 맛을 느낄 수 있는 석보 두들마을의 한옥체험관. 첩첩산중 두메산골 때묻지 않은 자연의 맛과 수백년을 이어 전해 내려온 전통음식 맛, 한옥의 고풍스러운 맛이 한데 어우러져 '세계 속의 명품 맛'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세계인의 입맛 사로잡는 전통한식 '음식디미방'
영양 석보면 두들마을 한옥체험관에서는 340년전 반가(班家)에서 먹었던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체험 상품이 있다. 재료와 조리법에서 식즉약(食卽藥), '음식이 곧 약이다'란 말이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런 맛과 건강이 스며들어 있다.
이 곳에서는 대구껍질누르미, 잡채, 어만두, 삼색전, 가제육 연근채, 수증계, 연계찜, 석이편 등 음식디미방 전통음식과 토장녹두나화, 감향진사주, 두강 청주, 오미자 화채 등 술과 음료를 체험할 수 있다. 대부분 달거나 짜거나 맵거나 하는 강한 맛은 찾을 수 없다. 자연 재료 자체의 고유한 맛과 향, 미각을 돋우는 부드러움과 신선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담백하고 깔끔하다. 입에 착 달라붙어 당기는 맛은 없지만 은은하면서도 입안 가득 느껴지는 풍미가 매력적이다. 음식 맛에서 매력을 느낀다.
코스요리에서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는 음식은 '대구껍질누르미'다. 12~2월 사이 산란기를 맞아 연안의 얕은 바다로 올라오는 대구(大口)를 잡아다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 비늘을 제거하고 약과 크기만큼씩 썰어둔다. 석이버섯과 표고버섯, 참버섯, 송이버섯 등 각종 버섯종류에다 꿩고기를 채소보다 잘게 다진다. 천연재료와 산초가루, 집간장과 참기름으로 만든 양념장을 함께 버무린다. 양념한 채소와 버섯, 꿩고기를 썰어둔 대구껍질속에 채워 쪄낸다. 여기에다 꿩고기 즙과 밀가루를 섞고 골파를 넣어 맛있게 즙을 낸 누루미를 양념소를 넣은 대구껍질에 두른다. '누르미'는 지금의 스프나 죽처럼 만들어낸 즙으로 부드럽게 오랫동안 따뜻하게 먹으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다.
누루미로 인해 첫 느낌이 따스하고 부드럽다. 씹을수록 각종 버섯이 가진 천연향이 한데 어우러져 풍미를 더한다.
다음으로 '잡채'다. 우리가 잔치음식으로 먹던 당면잡채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재료가 당면인 요즘 음식은 '당면채'로 고쳐 불러야할 듯 하다. 음식디미방을 통해 새롭게 발견된 경이로운 음식 가운데 하나다. 오이채, 무, 댓무, 참버섯, 석이버섯, 표고버섯, 숙주나물은 생것으로 준비한다. 도라지, 마른 박고지, 냉이, 미나리, 파, 두릅, 고사리, 시금치, 가지와 꿩고기 가슴살은 삶아 한입에 쏙 들어갈 정도로 가늘게 한치 길이로 찢어둔다. 여기에다 꿩고기로 육수를 내고 밀가루와 집간장, 참기름, 생강, 후추로 양념즙을 만들어 낸다. 준비된 갖은 재료들을 기름과 간장으로 볶아 섞거나 따로 담아 양념즙으로 삼삼하게 간을 맞춰 낸다. 도라지와 맨드라미로 붉은 물을 들여 보는 맛을 더했다.
찰지고 영양가 높은 숭어살로 만두피를 만들고 꿩고기와 채소로 소를 만들어 넣어 삶아낸 '어만두', 찹쌀·맵쌀가루를 썩어 진달래 꽃잎을 함께 버무려 쪄낸 화전과 녹두살을 갈아 팥으로 소를 넣어 부쳐낸 빈자병, 장떡전이 함께 나오는 '삼색전', 집돼지고기를 다지고 연근을 참기름과 식초에 무쳐 함께 참기름에 구워낸 '가제육 연근채', 닭고기를 채소와 함께 삶아낸 '수증계' 등이 차례로 나온다.
황분선(55) 음식디미방보존회장의 맛깔스런 설명이 곁들여 진다. 음식을 체험하는 동안 마음은 벌써 340년전으로 되돌아간 듯 하다. 음식 하나하나에서 정성과 철학이 느껴진다. 강한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입맛으로는 '맛있다'란 느낌보다 '무슨 맛이지?'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군더더기없는 맛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맛 보다 자연향과 천연의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기름으로 튀긴것 보다 삶거나 찌거나 구워내 담백하고 깔끔하다. 한마디로 '건강식'이며 '균형식'이다. 현대인들이 쫓아 찾고 있는 '웰빙음식'을 이미 340년전 조상들은 일상음식으로 즐겼다.
◆전통음식 관광상품 '맛질방문'
황분선 회장은 "선조들은 음식 하나에도 철학을 담았다. 음식솜씨를 자랑하지 않았으며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누가 될 것을 염려했다"며 "정부인 장씨와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조리서에 담긴 장씨부인의 손맛과 정성을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의 원형을 지키고 싶어요.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도록 퓨전화하고 도회지로 가져 나가서 거창한 식당에서 산업화하는 것보다 두들마을 한옥체험관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조상들의 건강음식 그대로 알리고 싶어요"
전통음식을 계승하려는 황 회장의 의지는 강했다.
2006년 7월쯤 결성된 음식디미방보존회는 30여명의 회원들이 매주 모임을 갖고 음식디미방 요리에 대한 연구와 재현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음식디미방을 통해 전해오는 146가지의 음식에서 30여 가지의 술과 60여 가지의 음식을 복원했다. 이 가운데 보존회원들이 20여가지의 음식과 10여 가지의 술을 추가로 복원했다. 지난해부터 석보면 두들마을 한옥체험관에서 음식디미방 복원 음식으로 코스요리 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상품은 10명 이상이어야 체험할 수 있다. 한옥체험관에서 음식디미방 재현음식 체험과 조리실습을 통해 지역반가의 음식문화와 생활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또 정부인 장씨 예절관에서 전통예절 배우기와 한지공예 등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이 밖에 음식디미방 전통음식을 체험하면서 고택 숙박 체험을 통해 조상들의 건강한 삶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맛질방문은 1인 3만원과 5만원 프로그램이 있다. 3만원은 흑임자죽 등 전체요리와 잡채·어만두·가제육 연근채·대구껍질누르미·삼색전 등 음식디미방 요리 5종류, 칠첩반상과 연계찜, 가지찜 등 식사에다 석이편, 오미자화채 등 음식디미방 요리 8가지를 맛볼 수 있다. 5만원 상품에는 동아누르미(계절에 따라 다름)와 수증계 등 2가지 요리가 첨가된다.
임명혜(45) 음식디미방보존회 사무국장은 "지금의 음식은 짜고 달고 맵는 등 강한맛이다. 현대인들은 건강을 해치는 음식 맛에 길들여져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어릴적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 달거나 짜지 않아 상대적으로 맛없다고 느껴지는 음식, 조상들이 즐겼던 약 음식의 맛을 되돌려 줘야 한다"며 음식디미방 요리들이 웰빙 디딤이 음식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향토음식산업화 특별취재팀=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프리랜서 강병두 pl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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