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까지 사들고 찾아뵈었는데 저보고 대학에 가지 말고 장사나 해보라고 그러시더군요. 그때는 참 많이 섭섭했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의 적성을 선생님께서 제대로 짚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허허허."
대한인쇄문화협회 김종호(63) 이사는 30여년 전 대구 협성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의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막연하게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던 그에게 담임 선생님의 '말씀'은 생각도 못한 큰 충격이었다.
그의 집안 형편은 넉넉지 못했다. 9남매의 맏이였던 터라 마냥 고집을 피우기도 힘들었다. 대학 등록금도 마련할 길이 안 보였다. 그는 대신 '인생은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해병대(193기)에 자원했다.
"제가 인쇄와 인연을 맺은 것이 해병대에서였습니다. 당시 대위로 근무했던 상관이 전역 후 인쇄업을 했는데 저를 불러주셨어요. 선친이 1973년 제대 무렵 작고하셔서 대식구의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컸지요."
학벌도 없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지만 그가 성공한 비결은 성실성이었다. "인쇄 수주를 따내려고 구로공단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모릅니다. 나중에는 고생이 많다며 저를 도와주셨지만 낯선 서울 생활은 정말 힘들었지요. 그때 만난 친구, 선후배가 진정한 재산이 됐습니다."
1982년 설립한 경남인쇄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인쇄업계의 마당발'로 통한다. 경조사를 꼼꼼히 챙기는 것은 물론 한 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책임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사업이 확장된 것은 외환 위기 때였다. 모두들 돈 떼일 거라며 거래를 꺼리던 중소업체들에 신용 하나만 믿고 납품을 하고, 어음 대신 현금으로 결제해줬다.
"저는 회사 통장 비밀번호도 모릅니다. 직원들을 믿어야 회사가 발전할 수 있지요. 전 회사나 우리 사회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힘들 때 도와주면 다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라이온스클럽 회원으로 봉사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그의 말에는 단순하고도 평범한 진리가 담겨 있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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