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이 끝난 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전에 알고도 방치했다는 음모설이 여러 번 제기됐다. 의회와 여론이 전쟁 개입을 반대하고 있어 참전을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고 진주만 피습은 좋은 재료였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이 일본의 암호를 해독하고 있었다는 사실, 해군력의 중심이었던 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 호넷, 요크타운)이 기동훈련 때문에 하와이에 없었던 점, 격침된 전함들이 한물간 구식이었다는 점 등이 그 근거였다. 또 일부 역사가들은 영국이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가 기동부대 사령관 나구모에게 공격 명령을 내린 사실을 알았지만 처칠이 미국을 전쟁에 확실히 끌어들이기 위해 루스벨트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종전 후 상'하 양원 합동조사와 역사학자의 추적 결과 이 같은 주장은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역사학자인 로버타 윌스테트는 1962년 "적절한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적절한 정보가 너무 많아서 진주만 공습을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또 진주만 주재 정보 책임자였던 에드윈 레이튼 해군 소장은 1985년에 "정보전에서 실패한 것은 각 군 내부 및 각 군 간의 분열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 칼 포퍼는 음모론을 "고통과 재난 등이 어떤 강력한 개인이나 집단의 음모에 의해 발생한다고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이해할 수 없고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들이 생겼을 때 등장한다. 음모론은 또 익명의 집단이 특정 목적(정치적이건 상업적이건)을 위해 구사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9'11테러 부시 행정부 자작설' 'KAL 007기 폭파 남한 정부 공작설' '다이애나 왕세자비 영국 정부 살해설' '폴 매카트니 사망설'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음모론은 사실적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만 갖추면 된다. 음모론 자체가 그것으로 이익을 보려는 집단의 음모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국가 중추기관에 대한 디도스(DDoS) 공격의 배후를 놓고 갖가지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정부 자작설'을 제기했다. 대정부 공격을 위해서라면 음모론도 마다 않겠다는 졸렬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것이 우리나라 야당의 수준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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