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잃어버린 우리 입맛 찾기

동물은 양념을 하지 않는다/영남대 교수 국사학과

우리 시대에 200~300개의 수저를 가지고 있으며, 400년 남짓 된 집을 쓸고 닦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의 세상에서 전통을 이고 있는 종부들이다. 노종부가 자신이 죽기 전에 상주들이 입을 상복을 지어서 각자 이름을 써놓았더라는 배려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다. 그런데 요사이 종부들이 '종가음식' 문화를 나누기 위해 나섰다. 또 경제적으로 예전 양반들의 삶을 누릴 만큼 성장한 시민들도 이에 대한 호응이 뜨겁다.

우리의 음식맛은 지난 100년간 크게 변했다. 우리는 우리 양념과 식재료 자체가 가진 우리의 맛을 버려왔다. 우리 혀에 대한 일제의 침략이 시작이었다. 1908년 일본인의 맛을 연구하던 이케다 박사가 흰 가루인 화학조미료 '아지노모도'를 만들어내었다. 이것은 재료의 씁쓸한 맛을 눅이고, 달큰하게 입맛을 당겨주었다. 그후 화학 조미료는 식민지를 비롯한 전세계의 입맛을 공략했다.

아지노모도는 1909년 5월, 한국에 들어왔다. 초기에는 전단지를 돌리고, 시골 마을마다 요란한 음악과 마술, 춤, 노래 등을 공연하면서 팔았다. 견본병 2전, 시용병 5전, 본제품 10전이었다. 이어 엄청난 물량의 광고 공세로 몰아붙였다. 여기에는 근사한 만화나 최승희와 같은 당대 최고의 예술인이 동원되었다. 왕가나 개명된 인사들도 이를 사용한다고 세뇌시켰다. '치는 시간은 잠깐이고 차나 된장국, 조림요리, 간장, 식초 등 어디라도 조금만 넣으면 맛도 있고 건강해져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선전했다. 지금이라면 허위광고로 고소될 판이었다.

아지노모도는 적은 비용과 적은 노력을 들여 음식을 만들려고 하는 식당에서 대환영이었다. 주로 국수, 냉면 등 국물을 만드는 집부터 점령당했다. 차츰 일반 가정까지 침투하게 되었으며, 광고 문안대로 안 들어가는 음식이 없게 되었다. 각 가정의 고유한 맛들이 사라지고, 차이 없는 음식이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아지노모도는 각 음식의 기본인 김치, 고추장, 된장, 간장을 다 사먹어도 아쉽지 않은 세상을 배양시켰다. 우리는 이렇게 고유한 입맛을 빼앗겨 갔다.

해방 이후 국산품 애용을 부르짖는 정부가 아지노모도의 수입을 금지하자, '미원'과 '미풍'을 만들면서 우리 스스로가 그 맛을 이어나갔다. 천연 재료를 섞었다는 다시다가 나온 때는 1975년이다. 천연조미료가 2008년에 등장했으니, 실로 화학 조미료의 100년 대행진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천연 조미료라도 조미료를 놓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갑상선 암의 치료 중에 고성능 방사능 치료 단계가 있다. 이 치료과정 동안 환자는 요오드가 들어있는 모든 음식을 제한받는다. 소금에 요오드가 들어 있기 때문에 기존 양념을 이용할 수 없다. 짠맛은 無(무)요오드 소금으로 낼 수 있으나, 조미료는 거의 사용할 수 없다. 처음에는 생야채 앞에서 토끼가 된 기분이 든다. 묘한 것은 일주일쯤 지나면서부터 식재료 자체의 맛을 알게 된다. 맨밥이 고소하고, 배추가 달다. 즉 그동안 조미료에 익숙해 왔던 혀를 건지게 된다. 이때쯤 되면 오히려 신체 컨디션이 나아진다. 확실히 혈압은 떨어지고, 체중이 준다. 조미료가 없는 담백함이 우리의 순수를 회복해준다.

본래 동물은 양념을 하지 않는다. 양념은 각 민족 문화와 환경의 결정이다. 따라서 우리 땅에서 오랜 체험을 겪으면서 이루어 온 우리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이 우리에게 맞다. 게다가 최상의 질로, 절제와 여유, 품격과 정성을 담은 음식은 우리의 건강을 구할 것이다. 95세 된 노종부가 우리를 구할지도 모른다.

최근 런던에서 OECD 17개국을 상대로 일일 식사 시간을 조사했다. 17개국 중 한국을 포함한 10개국의 하루 식사 시간이 1시간 미만이었다. 이들 나라가 이번 경제 위기를 맞이하여 경제발전 속도가 떨어졌다는 보고이다. 부지런히 일하기 위해 먹는 데 드는 시간까지 아낀다는 말은 아직도 튼튼한 경제 기반이 아니었다는 말이었나 보다. 밥을 오래 먹으면 경제가 발전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건강과 문화를 곁들인 식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지 않을까?

이제 식민지 잔재, 상업성으로부터 우리 음식을 되찾아와야 한다. 일제가 우리의 혀를 강탈하기 위해 노력한 만큼, 아니 그보다 몇배 더 우리의 혀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구경북에만도 아직 130여 종가가 있다.

김정숙(영남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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