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당)의 李華(이화'?~676)는 그리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지은 弔古戰場文(조고전장문)은 문인의 필독서였던 古文眞寶(고문진보)에 실릴 정도로 빼어난 문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내용은 옛날 전쟁터에서 죽은 원혼을 기리는 것이다.
그 안에 이름 없이 죽어간 병사들을 가리켜 誰無兄弟如足如手(수무형제여족여수) 誰無夫婦如賓如友(수무부부여빈여우)라고 한 부분이 있다. 누구라서 손발과 같은 형제가 없으며, 누구라서 손님이나 벗 같은 부부가 아니겠는가라는 뜻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말은 형제와 부부에게 警戒(경계)하는 말이 됐다. 如足如手는 형제는 서로를 자신의 손발처럼 아껴야 한다는 것으로, 如賓如友는 부부는 서로 손님처럼 공경하고 벗처럼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뜻을 담게 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내놓은 '여성가족 패널조사'에 따르면 부부싸움의 이유는 '본인 또는 남편의 생활 습관' '경제적 문제' '자녀 교육 문제' 순이었다. 심각한 것은 부부싸움 이후의 태도이다. 응답자 2천114명의 20.5%인 433명이 '상대방 대신 자녀 야단치기'라고 했다. 부부싸움의 후유증이 맨 먼저 자녀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일주일 이상 서로 말하지 않기'(16.4%), '폭언이나 욕설을 하거나 듣기'(14.8%)가 그 뒤를 이었다.
가끔 주변에서 서로 높임말을 쓰는 부부를 만날 수 있다. 서로 높임말을 쓰면 행동과 말을 함부로 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자식에게 높임말을 쓰는 부모도 있다. 가족 사이에 뭔가 벽이 있는 것 같고, 서먹서먹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온 가족이 서로에게 인격체로, 당당한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는 자부심이 더 클 듯하다. 또한 부부싸움을 비롯해 가정 안의 불화를 미리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장치도 될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우리나라에서 11만6천500쌍이 이혼했다. 그나마 최근 10년 동안 가장 낮다. 같은 기간 32만7천700쌍이 혼인했다. 3쌍이 부푼 꿈을 안고 예식장에 있을 때, 1쌍은 서로 외면하며 법원에서 도장을 찍은 셈이다. 숱한 세월을 함께하다가 헤어지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새로 출발하는 신혼부부에게만큼은 如賓如友를 강조하고 싶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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