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미북 관계 정상화, 의지와 인내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이 완전하고 비가역적인 비핵화에 동의할 경우 미북관계 정상화를 논의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대사는 미국과의 대화에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하였다. 경색 국면에서 대화를 통한 공동의 관심사를 논의할 수 있다는 미북 양측의 언급은 긍정적인 신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적성 국가들의 대미관계 정상화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요구된다.

미국과 중국은 1970년대의 냉전 시기에 관계 정상화 과정을 밟아왔다. 1970년 미국이 먼저 중재자인 파키스탄을 통하여 관계 개선의 신호를 보냈다. 71년 모택동 주석이 미국의 탁구팀을 초청하였고, 같은 해에 키신저 국가안전보좌관이 비밀리에 방중하여 미중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하였다. 미국은 대중 금융제재와 무역 제한, 그리고 여행 제한을 단계적으로 완화, 해제로 나아갔다. 미중은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면서 72년 닉슨 미 대통령의 방중을 통하여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하나의 중국 원칙에 공감하는 상해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73년 연락사무소의 개설과 79년 국교 수립으로 양국 관계는 완전히 정상화되었다. 그러나 대만 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 미국의 정권 교체와 모택동의 사망 등으로 관계 진전이 지연되기도 하였다.

미국과 베트남은 80년대 말 이후 90년대의 탈냉전 시기에 관계 정상화 과정을 밟아왔다. 89년 베트남은 캄보디아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를 완전히 철수시켰다. 이에 미국은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협상의 개시와 제재 완화, 연락사무소의 개설과 국교 수립 등 네 단계의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91년 베트남은 미군 포로와 실종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고, 미국은 유엔주재 베트남 외교관들의 25마일내 여행 제한을 폐지함으로써 양국 간의 협상은 개시되었다. 92년 미국은 상거래 허용, 통신망 연결, 국제금융협력 등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취하였다. 95년 양국의 수도에 연락사무소가 개설되고 7개월 후 외교관계의 수립과 함께 대사관의 설치로 양국 관계는 정상화되었다. 미'베트남 관계 정상화 과정은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실종 미군 문제에 대한 베트남의 적극적 협력이 미국내 베트남전 참전 예비역들의 반대 완화로 이어짐으로써 진전되었다. 특히 베트남의 협력에 대한 반대급부식(quid pro quo) 네 단계 로드맵이 지켜지면서 구축된 상호신뢰가 양국관계 정상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과 리비아는 2000년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에서 관계 정상화 과정을 밟아왔다. 리비아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켜본 후 비밀리에 미국과 영국에 대량살상무기 폐기 결정을 통보하였다. 2004년 미국은 이익대표부 설치와 경제제재 완화, 연락사무소 격상과 경제제재 해제 등으로 양국 관계를 진전시켰다. 2006년 연락사무소가 대사관으로 승격됨으로써 26년 만에 외교관계가 복원되었고, 리비아는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도 삭제되었다. 당시 리비아 내 환경은 심각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 개혁'개방정책이 요구되었고, 미국도 중동의 대테러전 수행을 위해 리비아의 협력이 필요하였다. 관계 정상화 이후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가 특이하다. 카다피 국가원수가 체제보장과 대미관계 개선의 상응조치로 최대 쟁점인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결정함으로써 단기간에 정상화로 이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적성 국가들은 체제위기와 경제위기가 동시에 봉착되어 하나의 위기 탈출구로써 대미관계 정상화 과정을 밟아왔다. 반대급부식의 단계적 로드맵이 상호신뢰를 증진시키기도 했다. 정권교체가 있더라도 정책의 일관성 유지가 관계 정상화를 더욱 촉진시켰다. 관계 정상화까지 많은 시간과 인내가 요구되었다.

미북관계 정상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단기 과제는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문제, 인권과 경제제재 문제 등이 있다. 중장기 과제는 평화체제 문제,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 문제, 주한미군 문제, 수교 문제 등이 있다. 물론 미사일과 핵을 중심으로 한 대량살상무기 문제는 단기 및 중장기 과제 모두에 포함된다. 이러한 과제들이 일괄상정, 일괄타결, 동시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미북 간에 불신의 골이 깊기 때문에 단계적인 이행과 검증을 통하여 신뢰를 증진시킬 수밖에 없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의 입장과 주변국인 중국의 이해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다. 미국은 정권교체와 의회의 다수파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 유지가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북핵폐기와 미북관계 정상화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원칙, 포괄적 접근과 단계적 이행,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협력과 미북 양국의 의지와 인내가 요구된다.

양무진(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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