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고추요? 고추를 반으로 갈랐을 때 잡내가 없고 향긋하면서 매콤한 맛이 나야 해요. 식초 같은 냄새가 나면 잘못 말렸던 거죠. 또 태양에 비췄을 때 내부의 씨가 보이고 선홍빛을 내는 것이 실한 겁니다."
권명달(64'영양읍 화천2리)씨는 고추에 있어 이골이 났다. 영양에서 40년 가까이 고추 농사 하나에 매달려온 '영양고추의 산증인'이다.
"고추라는 작물이 키우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죠. 지금처럼 장마철이 되면 마음을 졸여야 해요. 고추가 병충해에 약하기 때문이죠. 또 한 번씩 우박이 오면 고추가 크게 상하죠. 고추농사는 결국 날씨에 달렸죠."
권씨는 20대 후반부터 고추 농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줄곧 해오던 고추농사를 이어받은 것. 초창기엔 3만3천㎡ 정도의 대규모 밭에 고추를 심었으나 인건비나 농자재비가 턱없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지금은 1만㎡ 정도로 줄였다. 고추 수확철이 되면 다른 일손을 크게 들이지 않고 아내와 함께 고추 따기를 한단다.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지금은 내병성이 강한 품종이 나와 그럭저럭 고추 키우는 재미가 있었지만 옛날엔 그렇지 못했다. 병충해에 크게 시달리거나 우박 등 궂은 날씨로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가끔은 재배한 고추가 전멸할 때도 있었다. "매년 1천만~2천만원을 투자해야 하는데 고추농사를 망칠 때는 수확이 별로 없잖아요. 그러면 곧바로 빚더미에 앉아요. 한때는 3년 동안 매년 적자가 1천만원이 넘기도 했죠." 더욱이 1980년대 말엔 수입 등의 영향으로 농산물 가격 안정이 안 돼 고추가 600g(1근)당 1천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서 잠시 대박을 얻기도 했다. "1979년쯤이었어요. 당시 고추에 병충해가 많이 드니까 전국적으로 재배되는 곳이 별로 없었죠. 유독 영양에서만 고추농사가 잘 되었죠. 그렇다 보니 당시 금액으로 1근당 1만2천원에 팔렸어요. 엄청났죠. 시장에 가서 1포대(50근)를 팔고 나면 택시 트렁크에 소고기를 한가득 담아도 돈이 남았죠. 그땐 잠시 돈 걱정을 안 했죠."
하지만 대부분은 고추농사로 재미를 못 봤다. 농사가 너무 힘들어 고추 업을 접고 도시로 잠시 떠나있기도 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고추 재배 외엔 뾰족이 할 것이 없었다. "다행히 다시 시골로 오니까 그 때쯤 병충해에 강한 품종이 잇따라 나왔어요. 그러면서 지금은 서서히 안정을 찾은 상태죠."
그에겐 오랫동안 직거래를 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큰 힘이다. "30년 넘게 꾸준히 직거래하는 손님도 있어요. 그 사람 말이 잠깐 다른 고추를 사용했는데 맛이 영 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 고추를 주문할 때면 정말 뿌듯하죠. 우리에겐 다른 것이 없죠. 정성껏 기른 고추를 소비자들이 맛있다고 느낄 때가 최고 아니겠어요."
그는 친환경고추를 고집하면서 일본 수출도 14년째 이어오고 있다. "영양고춧가루 특징 중 하나가 물에는 가라앉고 간장에 뜨는 것이죠. 고추씨도 적당하게 들어있다 보니 음식을 할 때 그만큼 조미료가 적게 들어가죠."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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