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15대 대통령이 어제 서거했다. 폐렴으로 입원한 후 쾌유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원에도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85년을 일기로 생을 마쳤다. 한국 정치의 거목이 사라진 것이고 국가 원로를 잃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큰 정치 지도자를 잃었다.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뜻이 남북 화해와 국민 통합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한 분을 잃었다"고 했고, 누구보다 충격이 클 민주당은 "이 시대의 위대한 스승을 잃었다. 어버이를 잃은 것처럼 황망하고 허전하다"고 애도했다. 평생 동안 협력하고 대립하며 '양김 시대' 동반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나라의 거목이 쓰러졌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국민들의 발길 또한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세계 주요 정상들도 애도를 표하고 있다. 그의 족적이 컸다는 방증이다.
김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은 그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기록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 정치가 걸어온 길목길목마다, 국민이 겪어온 영욕의 고비고비마다 김 전 대통령의 거대한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인 김대중 개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한국 정치에서 그만큼 好惡(호오)가 극명하게 갈리는 정치인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한 민주화 투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큰 발자국인 것이다. 한국의 두 기적이라 불리는 산업화와 민주화 역사 속에서 한 축을 담당한 탁월한 리더십이었다. 그랬기에 국민들은 4번의 대권 도전을 받아들여 정치인으로서 정점인 대통령 자리에 그를 선택해 앉힌 것이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忍冬草(인동초) 같은 그의 정치 인생은 1970년대와 80년대 권위주의 시절에 국민에게 희망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온 국민이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 시대에 김 전 대통령은 존재 자체만으로 국민에게 길을 밝히는 불빛이었다. 두 번 투옥의 6년 감옥살이, 10년 가택 연금, 납치당한 뒤 바다 한가운데 수장 위기, 군사재판 사형 선고, 외로운 망명 생활 같은 김 전 대통령의 고난과 역경은 돌이켜보면 어두운 시대를 살아내는 국민들에게는 역설적으로 축복이었던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의 수난을 지켜보며 국민들은 민주화 열망을 키웠고 오늘 이만큼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에 당선돼 물려받은 이 나라는 백척간두에 서 있는 부도 직전 상태였다. IMF 환란위기 속에 국민들은 망국 망령에 떨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과감한 경제 구조조정과 국민 역량을 결집해 낸 금 모으기 같은 지도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6'25 이후 최대 국난으로 불린 경제위기의 극복은 그의 빛나는 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은 평생 몰두한 남북 관계에서도 재임 중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금강산 관광길을 열고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 최고지도자가 두 손을 맞잡은 것은 반목과 충돌로 일관한 남북 관계를 화해와 공존의 길로 틀어놓은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그러한 한반도 평화 증진과 민주화 운동 공로를 인정한 노벨 평화상은 우리 국민에게도 자긍심을 높이는 영광이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한 햇볕정책에는 대북 퍼주기 논란과 함께 남북정상회담 직전 북쪽에 건넨 5억 달러에 대해 지금도 많은 비판이 따라붙고 있다. 햇볕정책의 효과 역시 북쪽의 잇단 도발과 핵실험으로 의문시하는 국민이 많은 게 현실이다.
다른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김 전 대통령에게도 功(공) 過(과)가 병존한다. 반칙과 食言(식언)을 넘나들며 집착한 권력욕은 그의 민주화 업적을 얼룩지게 하기도 했다. 자신의 세 아들과 친인척 그리고 측근 비리로 인해 도덕성 논란을 달고 청와대를 나온 것은 김 전 대통령 업적을 가리는 그늘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자신이 지역감정의 피해자이면서 수혜자였다. 호남의 맹주라는 사실 때문에 고초를 겪었지만 달리 봐서 그것은 자신의 영향력 기반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망국적 지역주의의 그 끝을 아는 정치가였다. 대통령 재임 중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성과는 남기지 못했다. 그는 생전에 국민 통합을 이루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의 병실과 그리고 이후 빈소에 이어지는 수많은 각계의 발길을 보면서 화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도 국민 화합이었을 것이다. 영원한 안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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