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인상파 화가인 고갱은 한때 파리 근교 브레타뉴 지방의 농촌 마을을 자주 찾았다. 대도시인 파리보다 물가가 싸 집세나 생활비가 적게 드는 그곳에 일종의 화가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었다. 프랑스 남부의 아를르로 내려간 반 고흐도 그곳에서 새로운 예술가 공동체를 꿈꿨는데, 고갱을 불러내려 잠깐 공동생활을 했지만 결국 불행하게 결별한 에피소드는 유명한 얘기다. 예나 지금이나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예술가에게 꼭 필요한 두 가지는 적은 돈으로도 견딜 수 있는 곳과 미술계와 단절되지 않고 효율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연결망이었던 것 같다. 요즘 국내외적으로 미술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 더러 운영하는 창작 스튜디오는 그런 측면에 부응한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다.
그 목적은 젊은 작가들에게 작업할 마땅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과 활발한 창작 활동을 진작시킬 만한 각종 프로그램에 연계시켜 주자는 것이다. 작가는 고립되어서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는 작업 여건도 필요한데 후자의 계획으론 그런 환경을 제공한다고 보기에 모순이 있지만 왕성한 창작 욕구를 북돋워주고 이름을 알릴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길을 터준다는 면에서는 현실적으로 더 많이 요구되는 목표이다. 자칫 상업화만 더 부추기는 결과를 부르지 않을까 우려되는 점도 있지만 젊은 작가들의 잠재적인 기량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사회적 관심을 유도할 필요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바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가창 창작스튜디오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지난 초여름에 대구문화예술회관과 공동으로 4명의 독일 젊은이들을 초청해 3개월 남짓 머물게 하며 기존의 입주 작가들과 함께 워크숍을 열기도 하며 진행해온 결과물을 가지고 전시를 열게 했다. 양쪽 젊은이들의 작업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고 특히 짧은 기간이지만 이곳 생활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이모저모가 몇몇 독일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표현된다는 점이 기대를 모은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독일로 이민 간 박준호 작가는 까치의 모형으로 '오작교'를 만들거나 각종 인쇄물로 종이학을 접어 설치한 작업을 통해 물리적 장벽으로 단절된 분단의 벽을 넘어볼 꿈을 꾸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뜀뛰기를 하며 노는 스프링 판과 천정에 매단 돈다발 그리고 철조망을 이용해 부정적 이미지로 비쳐진 한국에 대한 상반된 인상을 솔직히 드러내 보여준다. 입양 독일인 로베르트 브뤼머호프의 비디오작업 등 외에도 한국 작가 8명이 더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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