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夢遊廣桑山

碧海侵瑤海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파란 난새가 채색 난새와 어울렸구나

芙蓉三九朶 연꽃 스물 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난설헌(1563~1589)의 삶이란 그 전기에서 잘 드러나듯 결혼 전후를 경계로, 유채색에서 무채색까지 정의할 수 있다. 허균이 라는 말을 했으니 이 시는 일종의 시참(詩讖)이랄 수 있다. 시참은 우연히 지은 시가 뒷일과 꼭 맞는 일이다.

푸른 색과 구슬 색이 짝을 이루고 파란 색과 채색이 다시 짝을 이루어 인간 세상에서가 아니라 선계의 색채 군락을 이루었다. 연꽃 스물 일곱 송이가 바로 화자의 삶의 대체물이란 건 짐작하기 어렵진 않지만 란 시행을 보면 란 「곡자(哭子)」시편이 아니라도 그 삶이 얼마나 신산했던가 알겠다.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의 기본색은 모두 원색이지만 그 색이 섞이면서 중간색이 나타난다. 푸른 색과 구슬 색이 섞이면, 부드러운 푸른 색이 나타날 것이고, 파란 색과 여러 가지 채색이 섞이면 역시 더 부드러운 채색이 드러날 것이다. 붉은 색이 달빛과 서리 위에선 몽롱한 붉은 색으로 바뀐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이미 난설헌의 인식에선 이런 중간색의 선호도가 뚜렷하다는 사실이다. 그 중간색 선호는 선계에서의 신비감을 위한 몽환적 묘사이다. 이 시의 중간색 선호는 앞서 말한 그대로 선계에서의 신비감에 일조하기 위한 것 외에도 시인의 감각을 따라간 것이 아닐까. 4구의 시행 모두 꿈 속의 불길한 몽유이겠지만 그 역시 자의식의 발로이다.

허초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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