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어디가 잘못됐는지 지적도 안 해주고 보고서 다시 쓰게 하기, 데이트 약속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 야근 시키기, 경쟁 관계에 있는 입사 동기를 드러내고 띄워주기 등등. 그래도 퇴근 후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인 상사 욕하기 시간에 스트레스도 풀고, 어쩌다 상사가 "고생 많지?"라며 어깨라도 두드려주면 그간 쌓였던 그 많은 증오와 원한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혹시라도 그 상사가 지독한 독설가에다 부하 직원들 사이에서 '마녀'로 소문난 노처녀이고, 남자 부하인 당신에게 생리대 심부름까지 시키는 사람이라면 어쩔 것인가? 회사내 말단 직원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으로 꼽힌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당신에게 결혼하자고 한다면 또 어쩔 것인가? 영화 '프로포즈'는 바로 이런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느 날 결혼을 '명령'하는 마녀 상사
성공 가도를 달리는 출판사 편집장 마가렛 테이튼(산드라 불록). 출근 시간에 그녀가 떴다 하면 직원들은 인터넷 메시지창을 통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서로에게 알리며, 행여라도 트집 잡히지 않으려고 생고생을 한다. 그녀의 존재는 카리스마 그 자체이자 두려움의 대상이고,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다. 거칠 것이 없을 것 같던 마가렛의 앞길. 하지만 어느 날 캐나다 출신인 그녀에게 추방 명령이 떨어진다. 미국내 워킹 비자가 만료됐으며 더 이상 미국 회사에서 일할 수 없다는 것.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위기 상황. 지금껏 쌓아온 명성과 경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순간이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남자 비서 앤드류 팩스턴(라이언 레이놀즈). 생리대 심부름까지 마다하지 않고, 아침마다 대령해야 하는 편집장의 커피를 행여 쏟는 일이 발생할까봐 자기 몫으로 사는 커피조차 편집장 입맛과 똑같은 커피를 사는 바로 그 남자. 편집자가 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3년간의 '노예 생활'을 묵묵히 견뎌온 불쌍한 남자.
마가렛은 앤드류에게 결혼할 것을 '명령'한다. 이유는 자신이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아울러 '내가 쫓겨나면 너도 쫓겨나기 때문에'. 그러면서 "조만간 이혼해 줄테니 결혼하자"는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위장 결혼은 쉽지 않다. 이민국 직원은 이후 인터뷰와 주변 조사를 통해 실제 결혼인지 확인하겠다고 윽박지른다. 결국 이들 둘은 앤드류의 고향인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로 가서 약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앤드류의 새로운 모습들. 그저 가난한 시골 출신 편집자 지망생이 아니었던 것. 알래스카에서 이른바 '재벌'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부를 쌓은 집안의 외동 아들이며, 따뜻함이 넘쳐나는 가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란 남자임을 알게 된다.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앤드류를 환영하기 위해 팩스턴 가문의 저택에서 이웃 주민 50여명이 모인 '조촐한' 파티가 열린다. 친구들은 놀림 반, 시샘 반으로 앤드류와 마가렛이 키스할 것을 요구하고, 마지못해 키스를 나누는 둘은 무언가 짜릿한 전율이 흐름을 느낀다.
◆뻔하지만 유쾌한 할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
뒷부분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뻔한 스토리로 전개된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그대로 밟고 있다. '프로포즈'는 후반부에 극적 반전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워낙에 뻔한 결론을 내비치다보니 그다지 긴장감을 주지는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이 결론이기 때문. 줄거리를 모두 안다고 해서 영화 보는 즐거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프로포즈'는 줄거리로 보는 영화가 아니다.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내뱉는 대사, 그리고 주연 및 조연급 배우들의 눈빛과 표정 연기가 영화를 살리고 있다.
국내 인터넷의 평점은 9점대로 상당히 높은 편. 미국에서도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영화 보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하고, 가끔 '푸하하' 웃음을 쏟아내게도 하지만 배꼽잡는 폭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유쾌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로맨스 영화일 뿐 처음부터 작정하고 웃겨보자는 식의 코미디물은 아니다. 영화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을 놓쳐서는 안 된다. 결국 결혼에 동의한 두 커플은 이민국 직원 앞에서 인터뷰를 한다. 별의별 희한한 질문이 다 나온다.
◆45세 산드라 불록과 33세 라이언 레이놀즈의 사랑
그간 작품 활동을 꾸준히 했음에도, 참 오랜만에 산드라 불록을 만난 느낌이다. 15년 전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나온 '스피드'(1994년)를 통해 국내 팬들에게 얼굴을 널리 알렸고, 이듬해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년)에서 특유의 매력을 뽐냈던 배우.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어떤 영화였지라며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짧은 소개부터 먼저. 철도 토큰 판매원인 루시(산드라 불록)가 늘 철도를 이용하는 한 멋진 신사를 짝사랑한다. 물론 대화 한 번 나눠본 적이 없다. 어느 날 불량배에게 떠밀려 플랫폼에서 철로 위로 떨어진 신사는 의식을 잃게 되고, 그를 구해준 루시는 졸지에 병원에서 그 신사의 애인으로 신사의 가족들에게 소개된다. 가짜 약혼녀 행세를 하면서 잠시 행복에 빠지지만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데. 결국 그 신사의 동생인 잭 캘러헌과의 사랑이 싹트게 된다는 내용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보았을 때에 산드라 불록이 나이가 좀 들어보인다고 느꼈었다. 이번 영화 '프로포즈'에 등장하는 매끈하고 군살없는 그녀의 나체를 보며 갑작스레 나이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 소개된 그녀의 경력에는 1964년 7월생으로 나와 있다. 만 45세를 갓 지난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 속에서 자글자글한 눈가의 주름과 손 주름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15년 전과 비교해 산드라 불록의 매력이 줄지는 않았다. 비록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특유의 말 장난과 표정 연기를 통해 발산되는 그녀의 매력은 이번 영화를 살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번 영화 '프로포즈'는 연하 남자와의 사랑이다. 앞서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 잭 캘러헌 역을 맡았던 빌 풀만은 그녀보다 11세 연상이었다. '스피드'에서 호흡을 맞췄던 키아누 리브스는 그녀와 동갑, 올해 45세이다. 하지만 '프로포즈'에서는 무려 12세 연하인 라이언 레이놀즈와 사랑하는 사이로 등장한다. 실제 나이 차이는 띠동갑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만큼 차이가 나지는 않는 것 같다. 영화는 둘의 나이차를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2006년 앨라니스 모리셋과 이혼한 뒤 지난해 스칼렛 요한슨과 결혼했던 라이언 레이놀즈. 늘 자신감 넘치는 매력남으로 이미지를 쌓아왔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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