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문화재 좀 더 세심하게 보호해야

경주 사천왕사에 세워졌던 신라 문무왕릉 비의 상단부가 200여년 만에 발견됐다. 이 비는 정조 20년인 1796년에 발견됐다는 기록이 있을 뿐 그동안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 뒤 1961년 비석의 하단 부분이 경주 동부동에서 발견돼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상단부는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상단부가 발견된 곳은 같은 동부동 한 주택의 수돗가였다. 수도 검침원이 검침을 하다 장독대 시멘트에 박혀있는 것을 발견한 뒤 주인과 함께 시청에 신고해 조사를 벌인 결과 밝혀졌다.

이 비는 신라 김씨의 가계를 밝히는 국보급 문화재다. 앞면에는 신라 왕실 김씨의 내력과 태종무열왕, 문무왕의 업적 등이 있고, 뒷면에는 문무왕의 죽음과 유언, 문무왕을 찬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신라 김씨의 조상이 흉노족이라는 학계 일부의 주장을 밝힐 수 있는 중요 자료이기도 하다. 또 비문을 해독하면 알려지지 않은 어떤 역사가 새롭게 밝혀질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문화재가 발견된 곳이다. 집주인에 따르면 이 비문은 최소한 40년 이상 집의 수돗가에 있었다고 한다. 10년 전에는 한문이 새겨진 글귀를 보고 경주 시청에 신고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했으나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문화재에 대한 당국의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일부가 심하게 마모됐으나 비문 전체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 사례는 헤아릴 수 없다. 1979년 충주시 가금면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된 고구려 장수왕의 중원고구려비는 우물가의 빨래판으로 사용되다가 비문이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됐다. 국내 유일의 벽돌 무덤인 백제 무령왕릉은 송산리 고분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됐고, 국보인 백제금동대향로는 주차장 보수 공사 때 논바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로 어느 곳을 파도 문화재가 나오고, 일반 가정의 허름한 돌조각 하나도 문화재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문화재의 보고(寶庫)나 다름없다.

문화재는 우리의 역사와 같다. 한 번 망실(亡失)되면 찾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영영 묻혀버릴지도 모른다. 우리의 뿌리를 밝히는 귀중한 문화재가 더 이상 허술하게 내버려져서는 안 된다.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서 숨어 있는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사라지기 전에 세심하게 챙겨야 할 때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