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1979년 음반 '벽'(The Wall)은 인간 소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Another Brick in the Wall'의 뮤직 비디오를 통해 학생을 학교라는 공장이 양산하는 제품으로 표현해 획일적인 체제 교육을 비판했다. 또 Hey You~Is There Anybody Out There?~Nobody Home으로 이어지는 곡들은 현대 문명사회에서의 인간 소외 현장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 소외의 가장 극명한 현장을 전쟁을 통해 보여준다. 이 경향은 리더인 로저 워터즈의 어릴 적 상처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로 워터즈가 태어난 지 5개월 만인 1944년 3월 이탈리아 안지오 전투에서 전사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반전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음반에 실린 1분여의 'Vera'도 반전 곡이다. 그는 이 곡에서 '누가 베라 린을 기억하나요? 햇살이 비치는 날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하나요?'라고 노래한다. 짧고 단순한 가사로 어떤 곡보다 반전 분위기가 강하지만 베라 린을 모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영국 여가수인 베라 린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There'll Be Bluebirds Over The White Cliffs of Dover'라는 곡으로 '군인의 연인'이라고 불렸다. 이 곡은 당시 영국 본토에 대한 나치의 무차별 폭격이라는 절망적인 시대 상황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였다. 특히 '당신은 곧 고향집 작은 방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거야'라고 속삭이는 베라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해 92세인 베라 린의 선곡집 'We'll Meet Again'이 최근 영국 팝 차트 1위에 올랐다고 한다. 밥 딜런이 올해 초 세운 67세의 기록을 단숨에 깨뜨린 것이다. 1942년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스탠리 큐브릭의 반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핵폭탄이 작렬하는 장면에 삽입되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일지는 몰라도 우린 다시 만날 거야'라는 희망적인 가사다. 하지만 워터즈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아버지를 통해, 큐브릭은 핵폭탄을 통해, 영원히 만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며 전쟁의 무서움을 알리는 반전곡으로 바꾸고 있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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