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55) 전 환경부장관이 오랜 객지생활을 마치고 고향같은 대구 남구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 귀향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15년 동안 그를 따라 다니던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치과의사로 컴백한 것이다.
이달 5일 개원한 병원(대구시 남구 이천동)을 찾았을때 하늘색 마스크와 가운을 입은 그가 반갑게 나와 인사를 했다. 건네는 명함에 적힌 원장이라는 직함이 다소 낯설게 다가왔다. 아직까지 구청장, 장관이라는 호칭이 더 편하게 느껴질 만큼 오랫동안 의료계를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경북고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1980년대 초 대구에서 개원을 했던 이 원장은 1995년 남구청장에 선출되면서 진료 일선을 떠났다. 남구청장을 거쳐 지난해 4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공백이 있었다. 많은 남구 주민들도 치과의사 대신 청렴하고 일 잘한 구청장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길을 가다 마주치거나 병원을 찾은 주민들과 정겹게 안부를 주고 받는 풍경에서 구청장의 이미지가 아직 남아있음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직을 떠난 뒤 두 달 동안 절에 들어가서 마음도 정리하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보답할 길이 막막했습니다. 고심 끝에 치과의사로 봉사하는 것이 도와주신 분들의 뜻을 져버리지 않는 길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는 정당에 입당하라는 정치권의 구애를 뿌리치고 대구로 내려왔다.
이 원장이 치과를 개원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시내에서 번듯하게 시작하라고 권하는 이도 있었고 장소를 제공할테니 어서 오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남구청장 재임시절 노인복지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이천동을 치과 개원지로 낙점했다. 노인,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민여성들을 돕는 일을 시작하는데 이천동만한 최적지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개원 과정은 쉽지 않았다. 우선 차질없이 진료할 수 있는 실력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잃어버렸던 감각을 되찾기 위해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지난해 8월부터 치의학 공부를 다시했다. 서울대 치대와 삼성의료원, 세브란스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을 다니며 자식같은 어린 후배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국내에서 열리는 웬만한 세미나에도 모두 참석했다.
"배우는게 힘이 들어서 손이 풀리지(익숙해지다) 않으면 생업을 위해 식당이라고 해야겠다 말할 정도였습니다. 4개월 정도 강행군을 하고 나니 손이 풀렸습니다." 하나가 해결되고 나니 이번에는 자금이 발목을 잡았다. 특정한 직업도 없고 평생 돈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다 보니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기 때문에 대출이 여의치 않았다. 개원을 미루면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어렵게 병원문을 열었다.
건들바위 네거리와 미군부대 사이에 위치한 병원에는 '꿈, 사랑, 나눔을 드린다'는 문구가 걸려 있다. 이 원장의 병원 운영방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으로 병원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를 묻자 그는 "정치를 한 덕택에 말 한마디 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자칫하면 오해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며 "조합원들이 공동출자해서 저소득계층의 의료를 지원하는 의료생활협동조합을 지향하고 있습니다"며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또 "시민단체 대표로 선거에 출마해 남구청장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동안 정치를 했다기보다 시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활동했습니다. 이제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시민운동도 많이 변했습니다.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부딪히면서 시민들의 소리를 듣고 느끼며 새로운 시민운동의 방향도 제시하고 싶습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 정치에 대해 질문했다. 그의 인생에서 정치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원장의 정치 여정은 굴곡이 많았다. 남구청장 재직 당시 닮고 싶은 단체장 1위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 했지만 그 이후는 순탄치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정치적 융통성을 조금만 발휘했으면 정치 인생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소신에 따라 행동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 정치의 뜻은 접은 것일까. 그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지금은 정치를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사는 것이 정치입니다"며 웃어 넘겼다.
이 원장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가 의료계에 필요한 사람으로 남을 지, 정치계에 필요한 사람으로 돌아갈 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것 같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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