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감독과 심판. 앙숙은 아니지만 감독입장에선 항상 아쉬운 사람이 심판이다. '결정적 순간에 파울만 안 불어줬다면 이길 수 있었는데….' '패널티킥을 불지 않아도 되는데….' '애매한 상황에서의 업사이드 판정' 등. 감독은 일단 경기를 공정하게만 봐주면 90점 이상인 A급 심판이다. 그에 더해 게임 흐름상 우리 팀에 약간 더 유리하게 진행됐다면 A+ 심판.
심판 역시 경기가 끝난 후 진 팀이든 이긴 팀이든 감독이 먼저 와서 '수고했다'는 의미의 악수를 받아야 맘 편히 한 경기를 마감할 수 있다. 혹시 진 팀이 그냥 가버리면 다소 찜찜하다. 이래저래 심판도 피곤한 일이다. 아무리 공정하게 했다해도 가끔 오심이 나올 수 있으며, 또 고의적인 반칙이나 너무 거친 항의를 하면 경고나 퇴장을 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
이런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16일 대구의 유소년축구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하태호 대서중 감독과 대한민국에서 7명 밖에 없다는 국제축구연맹(FIFA) 심판 중 1명인 김동진 레퍼리를 대서중학교 운동장에서 보게 된 것. 둘은 아주 친근한 듯 축구에 대해 얘기했지만, 각자의 본분으로 돌아오면 서로 입장이 판이했다. 하 감독을 김 심판을 통해 그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그들만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유소년 축구클럽의 선구자 '하태호'
하태호 감독은 30대를 고스란히 대서중학교에서 선진국형 축구를 가르치는데 바쳐왔다. 딱 10년째다. 한국만의 전형적인 엘리트 교육위주에서 탈피해 '방과 후 축구'를 끝까지 고수하며 지금은 본인의 이름을 건 '하태호 유소년 축구클럽'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놓았다. 공부를 다 하면서도 집중력있게 축구를 훈련해도 실력을 쌓기에 충분하다는 게 그의 논리.
하 감독은 "축구만 죽으라고 한 선수는 나중에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며, 축구를 하지 않게 됐을 때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길도 차단된다"며 "공부도 시키면서 축구를 가르치다보면 그 중 재능이 있는 선수들은 자연 발굴되고, 이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면 되는 것"이라고 그의 '방과 후 축구'에 대한 철학을 얘기했다.
초창기엔 학교와 학부모 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우리나라에서 그런 식으로 축구를 해서 언제 실력을 향상시키고 전국대회에 입상하냐'고 힐난하기도 했고, 그를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꿋꿋하게 버텨냈고, 지난해에는 100여개 팀이 참가한 전국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는 성과도 올렸다. 지금은 그 누구도 그의 축구팀 운영방식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입을 떼지 못한다.
이런 신념으로 시작한 그의 (사)하태호 유소년 축구클럽은 차범근 축구클럽이나 홍명보 축구클럽보다 일찍 시작됐다. 하 감독은 프로 축구선수로 활약하다 무릎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유소년 축구가 가장 잘 운영되고 있는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와 이를 대구에 일찍 정착시키며 7년째 키워오고 있는 것. 처음엔 1개 교실에서 시작해 지금은 유치부·초등부·중등부 등 21개 축구교실에 회원만 900명에 달한다. 이들 중에는 유소년 축구 국가대표 선수도 배출됐으며 키 191cm의 장신 차세대 유망주도 발굴됐다.
새로운 시도는 또 있었다. 외국인 코치를 영입한 것. 그는 축구선수 출신으로 대구에서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한 미국인을 만났는데 축구가 너무 하고 싶다고 해 축구코치로 탈바꿈시켰다. 26세의 브라이언 토마스 코치인데 자라나는 꿈나무들을 잘 가르친다. 본인 역시 영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가르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 감독은 그의 취업비자 신청을 위해 대한축구협회에 추천서를 의뢰한 상태.
하지만 하 감독이 가장 아쉬운 것, 그토록 염원하는 바람은 '대구 유소년 축구클럽 전용구장'이다. 혹시 국유지나 시유지라도 무상으로 30년 또는 50년 임대해주면 포르투갈어로 '따봉'이다. 그는 "누군가 축구에 대한 무한애정과 대구에서 자라날 세계적인 축구스타 탄생을 위해서라도 투자해주기를 기도해본다"고 말했다.
하 감독은 대구가 육상 뿐 아니라 축구 꿈나무들의 '메카'가 되기를 바랐다.
◆FIFA 심판은 내 천직 '김동진'
그에게 축구선수 출신으로 타고난 체력과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관련 지식 그리고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덕에 FIFA 심판이란 직업은 어쩌면 운명처럼 다가온 천직인지 모른다.
김 레퍼리(Referee·심판)는 국내 및 국제 심판 테스트에서 속된 말로 '어디하나 꿀릴 게 없다'. 아무리 경험이 풍부한 명심판이라도 영어회화나 영어 필기테스트, 체력테스트에서 그를 따라잡긴 힘들다. 때문에 대한민국 FIFA 심판 7인에 속하고 그 중에서도 3명 뿐인 엘리트 심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체력테스트는 정말 간단하지 않다. 그는 기자에게 '이 테스트를 통과하면 지금 당장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했다. 150m를 30초 안에 달리고 또 50m를 35초 안에 걷고 또 150m를 30초 안에 달리고 또 50m를 35초 안에 걷는다. 이를 10~15회 반복해 3~4km를 쉬지 않고 뛰다 걷다 하는 것. '심장 압박이 심해 절대 못한다'며 확신에 찬 그의 눈빛을 보고 도전할 맘이 싹 사라졌다. 실제 경기에서 심판이 뛰는 운동량은 경기장 선수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때문에 주심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코스인 것.
국제심판이 돼 전 세계를 누비며 또 세계적인 축구스타들에게 경고를 주는 기분은 어떨까. 하지만 이는 막연하게 동경하는 입장일 뿐이다. 힘들고 또 고된 일이다. 오며 가며 비행기에서 이틀을 보내고 막상 도착해도 시내관광조차 힘들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
중요한 국제경기 심판을 보고나면 살이 3kg나 빠지고 다음날 제대로 일어나기도 힘들 정도로 녹초가 된다. 또 혹시라도 오심으로 판정나거나 상대팀에서 클레임(Claim·이의 제기) 또는 컴플레인(Complain·불평 불만)을 걸지 않을까 매경기마다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비하면 장점도 크다. 한 경기당 일일 수당(신사임당권으로 10여장)이 쏠쏠한데다 FIFA 심판이 아니었으면 결코 가보지 못할 나라들도 많이 다녔다는 것. 그는 주로 유럽, 중동 등을 다니는데 벌써 방문한 국가가 35개국에 이른다. 갈수록 국제심판으로 명성이 쌓여가는 것도 돈 이외에 얻는 명예이기도 하다.
김 레퍼리가 꼭 해고픈 싶은 일이 아직 남아있다. 바로 월드컵 경기에 당당하게 한국심판으로 참가하는 것.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는 그의 이름이 예비심판 명단에 없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다. 국가간 대항경기인 A매치, 국제대회에서의 심판경험 등을 더 쌓아야 2014년이나 2018년 월드컵에서 한국심판으로 활약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는 "올해는 주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더 큰 무대에서 심판을 보며 경력을 더 쌓을 것"이라며 "아직도 결정적 오심이나 상대팀의 심한 클레임을 받은 적도 없기 때문에 '김동진'이라는 이름 세 자를 더 자랑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서울 FC가 맞붙었던 2007년 여름의 경기. 그는 맨유의 스트라이크 루니와 잠시 얘기했는데 아주 매너가 좋고 깔끔한 축구를 하는 선수라며 추켜세운 뒤, "세계 최고의 프로리그 팀답게 심판도 절대적으로 존중해주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소회했다. 더불어 그는 "우리나라도 아직은 심판에 대해 여러가지 말이 많고, 거친 항의로 불상사도 일어나지만 앞으로는 심판의 권위가 존중되는 추세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레퍼리는 한국인 국제심판 중에서 지난해 국제대회에 12회 출전, 최다 참가기록을 세웠다. 그는 지난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한 '엘리트 심판' 세미나에도 한국측 참가자로 선정됐다.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예선과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깔끔한 판정으로 지난해 올해의 심판상을 수상한 것.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하태호는? 1970년생, 경북 포항 출생. 안동 영가초교, 안동중·고교, 경일대 졸업.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에서 4년간 활약, 무릎 부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대구의 유소년 축구클럽 창단, 10년간 대서중 축구감독을 맡고 있음.
※김동진은? 1973년생, 경남 통영 출생. 통영 진남초교, 통영중, 마산 창신고, 경북대 영문학과 졸업. 1997,8년 축구심판 자격증 획득(1,2급), 8년간 국내 각종 리그 및 대회에서 심판으로 활약, 2005년 FIFA 심판 자격 획득. 2008 조선일보 주최 윈저 어워드 심판상 수상. FIFA 심판 7명 중에서도 엘리트 심판(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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