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부터 60대까지의 남자들이 원하는 이상형을 알려주는 한 케이블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10대들의 이상형은? 당연히 예쁜 여자. 그렇다면 20대는? 역시 예쁜 여자. 30대부터 60대는? 말할 것도 없이 예쁜 여자. 결혼 또는 연애를 앞두고 방황하는 청춘 남녀에게 선배들이 던지는 말은? "예쁜 여자 소용없다. 나중에 다 얼굴값(?) 한다. 성격 좋은 여자, 능력 있는 여자가 최고다." 뭐, 솔직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 물어보자. 얼굴과 몸매는 아니올시다인데 그저 성격 좋고 능력 있는 아내가 있다면, 그래도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매일 같이 아내 얼굴을 볼 때마다 스스로 최면을 걸지도 모른다. '내 아내는 착하다. 내 아내는 능력있어. 얼굴은 필요 없어.'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얼굴 예쁜 여자만 찾는 건 속물이라고 욕하는 여성들. 당신들은 남자 얼굴 안 보나? 내숭은 집어치우시지.
◆내숭녀 vs 짐승남
영화 '어글리 트루스'(The ugly truth)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의 주제는 단순 명료하다. '가식은 던져버리고 본성에 충실하게 사랑하자!' 가식덩어리 노처녀로 등장하는 애비(캐서린 헤이글)는 '고품격 교양 방송'을 지향하는 모 방송국의 아침 뉴스 프로듀서. 야한 농담을 서슴없이 끄집어내는 남자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고 여긴다. '100% 완벽남'을 만나기 전까지 웬만한 남자는 성에 차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커리어 우먼. 맞선 자리에 나가면서 미리 남자 프로필을 죄다 뽑아보고, 행여 대화가 썰렁해질까봐 미리 이야깃거리 목록까지 프린트해가는 여자. 하지만 그녀의 프로그램 시청률은 2%대로 바닥을 기고 있다.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 방송국에서 전격 섭외한 인물은 심야 TV쇼 '어글리 트루스'의 섹스 카운셀러인 마이크(제라드 버틀러). 사랑은 바로 섹스이며, 남자는 모두 변태일 뿐이라고 믿는 남자. 연애 초기 밀고 당기기의 달인이며, 남자는 잠자는 시간 빼놓고는 온통 섹스할 생각뿐이라는 주장을 편다. 요즘 대세인 꽃미남과는 10km 이상 거리를 두고 있으며,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엔 여성들이 끊이지 않는다. 여성들을 유혹하는 현란한 말솜씨에다 바람둥이 기질까지 갖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식없는 노골적인 표현.
◆유머 속에 녹여낸 불편한 진실
'어글리 트루스'는 불편한 진실을 뜻한다. 사랑은 육체가 아닌 마음의 끌림이며, 서로 간의 깊은 이해와 애정을 통해 섹스에 이르게 되며, 누군가 나를 100% 이해하고 인정해 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는 것. 바로 그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믿고픈 진실과 불편한 진실은 다르다. 마이크는 불편한 진실의 신봉자이다. 남자에게 사랑 따위는 개나 줘야할 대상이고, 오로지 섹스가 목표이다. 남자들이 보기에 다소 민망할 정도로 속 깊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남자는 꼬리치는 여자에게 안달내고, 아무리 끌리는 여자라도 잔소리를 시작하면 오만정이 다 떨어지며, 썰렁한 농담에 진짜처럼 웃어주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 마이크가 정신이상적 마초맨이라고? 노총각 마이크는 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났다. 하지만 여자들은 다 똑같았다. 상처받고 아파하며 마이크는 스스로 '사랑은 없다'고 믿게 됐다.
그와 반대로 애비는 로맨스와 이상적인 사랑을 믿는 여자다. 하지만 자신이 기다리는 완벽할 남자를 만날 가능성은 0%. 왜냐하면 그런 남자는 없으니까. 그런데 영화 속에 한 정형외과 의사가 나온다. 애비의 이웃집에 사는 그는 잘 생긴 꽃미남에 완벽한 복근을 갖추었고, 매너 좋고 지적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상형 완벽남의 출현. 마이크의 연애 특강을 받은 애비는 정형외과 의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무엇일까? 진실은 불편한 법이다. 하지만 영화 '어글리 트루스'는 유머와 솔직한 남녀 간의 대화를 통해 불편함을 덜어주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애인에게 "정말 남자는(여자는) 그래?"라고 묻지 마시라. 그런 질문 자체가 촌스럽고 진부한데다, 스스로를 가식 속에 가둔다. 사랑은 섹스로 가는 길이 아니라 가식이 없어지는 과정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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