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줄로 읽는 한권]최고와 최초를 꿈꾸는 자에게

"에베레스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맬러리는 1차에서 3차에 이르는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떠받쳐 준 중요한 인물이었다. 미국 순회강연 중에 왜 에베레스트를 오르느냐고 캐묻는 기자의 질문에 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가장 높은 꿈- 중에서

『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김훈 옮김/ 황금가지 펴냄/ 375쪽/ 8천원

"겨울 산에는 색이 많지 않다. 단순하지만 힘찬 몇 가지 빛깔이 있을 뿐이다. 대지를 뒤덮은 흰색, 맑게 갠 하늘의 파란 색, 숲의 녹색, 그리고 때때로 붉은 색이 섞인다. 그 색은 핏빛이다. 많은 빛깔은 필요치 않다."-또 하나의 봉우리 - 중에서

『신들의 봉우리 1·2』유메마쿠라 바쿠 원작·다니구치 지로 만화·홍구희 옮김/ 애니북스 펴냄/ 각권 9천500원

올해 7월, 늘 환한 웃음으로 히말라야와 교감을 나누던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가 세상을 떠났다. 히말라야 14좌 완등, 최단기간 기록 경쟁이 가져온 참혹한 결과였지만 그 기록의 벼랑 끝으로 그녀를 내몰던 스폰서 기업들도 일부 언론도 책임을 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었지만 세상의 눈들은 그녀를 잊었고 그녀의 경쟁 상대였던 오은선씨를 여전히 부추기고 있다. 많은 산악인들은 산은 "사람이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허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미영씨 역시 자신의 일기장에 "산과 겨뤄서는 안 된다"고 적어놓았지만 최초와 일등을 향해 치닫는 여론몰이는 결국 산으로 하여금 그녀를 허용하지 않게 만들고 말았다. 단 1그램의 무게조차도 견디기 힘든 고도에서 촬영 카메라마저 짊어져야만 하는 고통을 기업이나 일부 언론은 알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봉우리들이 있고 그것을 오르려는 많은 이들이 존재하는 한 최초와 일등만이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 어떻게 올랐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름 자체가 평가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두 책은 의미가 있다. 소위 산악 문학은 자연, 특히 산과 인간이 나누는 교감을 표현한 것이다.『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상업 등반대의 고객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르면서 겪었던 생생한 경험들을 쓴 실화이다. 그 고객들 중에는 쉰이 넘은 사업가와 산에 미친 청년과 야근을 하며 등반 비용을 모았던 우체국 직원과 히말라야에 대한 꿈으로 가득찼던 중년의 일본 여성이 있었고 그들은 가장 높은 꿈의 대가로 자신들의 목숨을 버려야만 했다. 단지 오르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을 왜 산은 허락하지 않았는지를 이 책은 생생히 말해준다. 『신들의 봉우리 』는 왜 산을 오르냐는 질문에 답이 되어버린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라는 말로 유명한 산악인 조지 맬러리에 대한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불과 200m 앞두고 실종되었다. 그가 과연 정상을 밟았느냐의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거리가 되었고 75년 만에 발견된 그의 시신을 통해 이제 막 종지부를 찍고 있다. 여전히 최초와 최고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 최초와 최고 뒤에 묵묵히 존재하는 세상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전태흥(여행 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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