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예초기의 소리가 산등성이에서 요란하다.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여 안부를 묻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정성을 다해 산소를 깨끗이 단장한다.
올해는 비가 많이 내려 벌들의 번식이 왕성하다. 벌초를 하다가 벌집을 건드려 다치는 안타까운 소식을 종종 듣는다. 벌은 위험하지만 꽃가루 수정을 도와 생태계를 유지하는 없어서는 안 될 곤충이다. 특히 꿀벌은 화분과 로열젤리, 벌집(밀랍), 벌꿀(봉밀), 벌독(봉독) 등을 생산한다.
화분은 벌들이 꽃가루를 꿀에 버무려 식량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평상시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변비가 있는 사람에게 사용된다. 로열젤리는 여왕벌이 먹는 식량으로 약간 맵다. 꿀에 비해 생산량이 적고 채취할 수 있는 시기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상당히 고가이며, 신체가 차면서 허약한 증상에 좋다.
벌집을 녹인 밀랍은 방습'항균 효과가 강해 중요한 물건 등을 보관할 때 많이 사용했다. 요즘에는 화장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 등지에서는 건강식품으로 응용되고 있다.
꿀은 한의학에서 봉밀이라고 한다. 포도당과 과당이 많아 인체에 가장 먼저 흡수되기 때문에 예전부터 따뜻한 물에 타 피로 회복제로 먹었다. 살균효과가 강해 가벼운 화상에도 꿀을 바르면 효과가 있다. 또 비타민 B가 많아 건성피부에도 좋아 마사지팩으로 애용된다.
벌독(봉독)은 의학적으로 유용한 물질이다. 진통과 소염 효과가 뛰어나고 면역기능을 증진시켜 준다. 한의학에서는 봉독을 활용한 요법을 봉약침요법이라고 부른다. 류마티스관절염과 만성요통 및 디스크질환, 퇴행성관절염, 오십견 등의 어깨통증, 염좌 등 각종 통증질환에 주로 활용한다. 또 신경염, 다발성경화증, 발기부전, 우울증, 신경증, 만성피로증후군, 탈모, 알레르기 등에도 응용하고 있다. 기원전 2천년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나 바빌로니아 의서(醫書)에는 봉독이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봉독은 신비한 약"이라고 했다. 또 최초의 침구학 문헌인 마왕퇴의서(馬王堆醫書)에는 봉독을 이용한 치료법이 기록돼 있다.
현재 봉약침요법에 관한 연구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 상태의 벌이 가지고 있는 독을 추출'정제해 경혈에 주입함으로써 인체의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질병을 치료하는 요법으로, 한의학에서는 이독치병(以毒治病)이라고 한다. 약물이 가지고 있는 독성을 잘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봉약침은 뇌혈관'심장'결핵'당뇨'신장 질환자를 치료할 때 주의해야 한다. 알코올은 봉독을 분해하는 작용이 강하기 때문에 치료기간 중 술은 금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봉독을 2만배로 희석한 용액을 주입해 환자의 민감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해 계속 치료하면서 조금씩 환자의 체질에 맞게 농도와 양을 조절하기 때문에 부작용은 없다.
민간에서는 벌침이라 해서 살아 있는 벌의 침을 뽑아 피부를 찔러 원액의 봉독을 인체에 직접 넣는다. 간혹 호흡 곤란과 전신 두드러기, 혈압 저하, 심장 박동 증가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항상 전문가에게 시술을 받아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도움말'한상원 대구시 한의사회 부회장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단독] 국민의힘, '보수의 심장' 대구서 장외투쟁 첫 시작하나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정동영 "'탈북민' 명칭변경 검토…어감 나빠 탈북민들도 싫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