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암(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주지 성파 스님은 해마다 옹기 5천개에 된장을 담근다. 된장 옹기는 오래된 것들이다. 5천개 모두 최소한 50년이 넘은 것들이고, 200년, 300년 된 옹기도 있다. 오래전부터 성파 스님이 전국을 돌며 수집한 옹기다. 스님은 유약을 보면 만들어진 시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맑은 바람과 따뜻한 햇볕을 받아 익은 된장을 스님들도 먹고 시중에 판매도 한다. 판매가 목적은 아니다. 이처럼 많은 된장을 담고, 오래된 옹기만을 쓰는 데는 전통을 잇겠다는 성파 스님의 뜻이 담겨 있다.
"된장은 우리의 전통입니다. 고관대작들에서부터 하층민들까지 누구나 된장을 담갔지요. 된장만큼 전통적이고 일반적이며, 고유한 음식은 드뭅니다."
오래된 옹기를 구해 쓰는 것도 전통의 맛을 내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백자나 청자는 벼슬아치나 큰 부자들의 집에만 있던 것이다. 그러나 된장을 담그는 옹기는 궁궐에서부터 상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없는 집이 없었다. 그러니 오래 묵은 옹기를 수집하고 쓰는 행위는 전통을 잇는 과정인 셈이다.
스님의 전통 잇기는 옹기와 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1980년대부터 천연 염색을 배워 익힌 다음,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근래에는 옻으로 컬러 염색하는 방법을 개발해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8월과 9월 서울과 부산 전시에 이어, 얼마전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도 전시회를 열었다.
옻이라면 흔히 검정색을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스님이 개발한 염색법은 빨주노초파남보 컬러 염색이 가능하다. 옻 향기와 더불어 은은한 빛깔이 일품이었다. 옻으로 총 천연색을 만들고 천에 염색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세계적으로 스님이 처음이다. 이 역시 우리 민족의 전통을 잇겠다는 스님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옻을 가구나 제기를 칠하는 데 널리 썼다.
전통 문화를 이으려는 성파 스님의 집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려시대의 한지 제조법을 복원하고 재현해온 지도 오래다. 제조법을 아는 노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경남 합천의 해인사 근처로 찾아가 배우고, 3년 동안 직접 종이를 뜨며 옛 방식을 익혔다.
우리 고유의 문학 장르인 시조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26년째 '성파시조문학상'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26회를 맞은 올해 문학상 시상식은 10월 부산에서 열린다. 또 전국 시조백일장을 열어 학생은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조 저변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 스님이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에 백일장 입상자는 부산 경남 지역 대학의 입학 특전혜택을 볼 수 있다.
"절에는 아직 우리의 전통 생활 방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청자나 백자 등 박물관에 있는 것만이 문화 유산은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우리가 쓰던 것, 먹던 것, 생활 방식 등이 모두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절에서 전통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서운암에 가면 6만평의 들꽃 단지도 구경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야생화는 거의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파 스님이 야생화 단지를 꾸미고 들꽃 축제를 열어온 것도 우리 문화 유산을 공유하자는 생각 때문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절에 오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들꽃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들꽃 구경삼아 왔다가 절 구경도 하고 돌아갑니다. 절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스님들이나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유해야 하는 것이지요. 들꽃 구경삼아 오셨다가 우리나라 절 문화도 둘러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서운암으로 들꽃 구경을 간 사람은 곧 자연의 일부가 된다. 스님은 꽃을 찾는 벌과 나비도 아름답지만, 그 속에서 꽃구경하는 사람 역시 아름다운 자연이라고 했다.
"6만평 꽃 속에 사람이 서 있으니, 사람이 곧 꿀벌이고 나비인 것이지요."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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