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의 신도시들에 흔한, 천막 지붕의 간이 식당들이 밀집한 지역을 지나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프랑스도 별수 없군. 이건 한국하고 똑같잖아. 축제를 앞둔 호들갑, 공사판의 소음,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지방 도시의 촌스러움에 나는 질렸다."-다시 여행을 시작하며- 중에서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최영미 지음/ 문학동네 펴냄/ 246쪽/ 1만3000원
"시(詩)는 아무리 장고(長考) 끝에 나온다 하더라도 결국은 찰나의 소산이다. 그림의 영감은 속속 떠오르지만 결국 지난한 색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는 가장 일상적인 글로 가장 응축된 '찰나 속 영원'을 포착한다. 그림은 가장 보편적인 시지각(視知覺)으로 가장 특수한 '공간 속 영원'을 구현한다."-이 세상의 모든 시인과 화가 - 중에서
『시인과 화가』김정환 지음/ 삼인 펴냄/ 363쪽/ 1만3000원
글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소통의 도구이다. 따라서 글이 책으로 세상에 나올 때는 분명히 작가의 책임이 따르게 된다. 그 책임이란 작가의 사물에 대한 깊은 사색, 그리고 인간에 대한 뜨거운 성찰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최영미의 새로운 산문집,『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는 행여 그녀가 여행이 아니라 글쓰기에서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색과 성찰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언제나 그녀 앞에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시집 이후 『시대의 우울』『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화가의 우연한 시선』등의 산문집과 미술 에세이집은 그녀가 소위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지고 당당해지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는 행복해 했었고 그녀의 또 다른 글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말한 것처럼 그녀가 꾸린 가방은 허술했을지언정 기름기가 잔뜩 낀 글을 들고 7년 만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힘들더라도 나는 모험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처럼 치사하고 고귀하며 흥미로운 우연을 나는 모르므로." 미용실에서 시간을 죽이는 가십거리, 그야말로 값 비싼 글들이 생산되는 현장은 결국 그녀에게 서른 잔치가 끝나 버렸음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서글프다.
김정환의 글은 어렵다. 그의 시가 그렇고 소설이 그렇고 산문집에 이르면 더욱 그렇다. 이렇듯 새삼 읽기의 어려움을 말하는 이유는 그의 사색의 깊이에 미치지 못하는 부족함에 있긴 하지만 어쩌면 글이란 늘 쉽게 써야만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클래식 음악 해설서『음악이 있는 풍경』에서 그의 은유와 응축에 넋을 놓았고 이번 예술 산문집『시인과 화가』역시 읽기가 녹록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밝힌 것처럼 그의 글쓰기는 시대의 산물이다. 불의에 분노하지 않고 어찌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그의 글이 어렵다 하더라도 정독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 바탕에 분명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전태흥(여행 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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