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녹색지대 사람들]장두일 영남대 교수

30대 중반부터 전원 속으로…"작품 소재 무궁무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에 있는 장두일(48) 영남대 교수의 전원주택은 말 그대로 전원주택이다. 자연 위에 군림하듯 2층, 3층으로 높게 쌓아올린 커다란 전원주택과 달리 단출한 단층건물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아담한 크기의 전원주택에 발을 들여다 놓으면 고즈넉한 가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잔디가 곱게 깔린 조그마한 마당 한쪽에는 수십년 된 감나무 한 그루가 허허로이 서 있고 처마 밑에는 야생화가 옹기종기 자라고 있다.

이웃집 감나무 밭과 경계를 이룬 돌담벽은 쌓다 만듯 아주 나지막하다. 집 뒤편 텃밭에는 고추, 호박, 가지가 영글어 있고 텃밭에서 수확한 고추가 가을빛 아래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마치 자연에 사람과 집이 동화된 느낌이다.

청도군 이서면소재지에서 장 교수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도 전원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과수원길 같이 정겨운 마을길 따라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지천에 널려 있는 감나무에는 가지가 휠 정도로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장 교수가 산좋고 물 맑은 이 곳에 터를 잡은 것은 1996년이다. 보통 정년퇴임 후 또는 나이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전원생활을 시작하는데 비해 그는 30대 중반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전원으로 들어왔다.

거기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숨어 있다. 대한민국에서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것은 녹록치 않다. 특히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전업작가로 다른 직업이 없었던 장 교수는 1995년 첫 개인전을 가졌다. 서울의 유명 갤러리 초대전 형식으로 열린 첫 개인전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처음으로 작품을 판매해 목돈을 손에 쥐었다. 언젠가 전원에 주택과 작업실을 마련하고자 생각해 왔던 그는 그 돈을 모두 털어 땅을 구입했다.

"땅만 사놓은 뒤 한참 후에 건물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땅을 사놓고 1년 안에 건물을 짓지 않으면 투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류해 과태료를 물어야 했습니다. 땅을 살 때 법을 잘 몰랐죠. 그래서 예정보다 일찍 전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집 지을 돈이 없어 대출을 받아 어렵게 건물을 올렸다. 그런데 얼마 후 IMF가 터졌다. 고정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졌다. 빚을 갚기 위해 전원주택을 팔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전원생활이 주는 정서적 영향 때문에 꾹 참았다. 그러다 1998년 왜관 순심여고 교사로 부임하면서 숨통이 터였다.

지금의 전원주택 부지를 구입한 것도 참 우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원래는 현재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곳에 사둘 집을 물색해 두었다. 동료 화가(이목을)와 함께 다시 그 집을 보러 가던 도중 길을 잘못 들었다. 낯선 길을 헤매다 한 노인을 만나 차를 태워 주었는데 그 노인이 땅을 소개해 줬다. "노인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동네를 처음 본 순간 '바로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바로 계약을 해 버렸습니다." 그가 터를 잡은 후 여러 화가들이 주변에 전원주택을 지었다. 우연스럽게 찾아온 인연이 전원타운 건설의 계기가 된 셈이다.

오랜 전원생활을 한 때문인지 장 교수의 작품을 보면 동심을 자극하거나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작업실에 들어가면 소년'소녀가 등장하는 작품이 눈에 많이 띈다. 소년은 강아지와 놀고 있고 소녀는 마당에 핀 들꽃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한여름 밤 평상에 누워 별을 바라보는 엄마와 아들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들풀, 들꽃의 이미지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땅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원에서 작품 소재를 많이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장 교수는 10월 17일부터 11월 8일까지 파주 헤이리 아트팩토리에서 15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땅에서 놀다'라는 주제 아래 3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모두 전원생활과 맥을 같이하는 작품들이다.

"어린시절을 돌이켜 보면 마당 자체가 큰 도화지였고 캔버스였습니다. 그 곳에 꿈을 그리고 희망을 적었습니다. 도시화가 가속화되고 농촌도 예전같지 않으면서 지금은 사라진 풍경입니다. 소박하고 질박한 질감으로 그 풍경을 담고 싶었습니다." '땅에서 놀다'는 바로 어른들이 상실한 원형이다. 장 교수는 그 원형을 통해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장두일 교수는…

2004년 영남대 교수로 임용된 장두일 작가는 한국화가다. 여느 한국화가처럼 그도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화두와 씨름하고 있다. 시대적 흐름에 맞게 한국화를 재창조하려는 그의 고민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작품은 한지에 먹과 물감을 여러 차례 뿌리거나 부어 밑그림을 만들고 그 위에 물감과 흙을 바른 뒤 도자기의 음각기법처럼 표면을 긁어내 형상을 만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된다. 독특한 기법으로 한국화에 새로운 조형성을 부여하고 있는 그의 작업은 화단에서 주목 받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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