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복 선생은 대구경북 사단(寫壇)을 개척해 한국의 유수한 사단으로 발전하는데 초석을 놓은 사진작가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15일부터 내달 5일까지 호텔 인터불고 엑스코에서 전시회를 연다. 아울러 1909년 10월 28일 태어난 최계복 선생을 기념해 28일 오후 3시 전시장에서 기념식도 갖는다.
대구 교남학교에 다니면서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최계복은 일본 교토에 유학한 뒤 사진으로 전환했다. 16세부터 7년간 교토의 한 사진기점에서 사진의 기초를 닦은 뒤 23세인 1932년 귀국해 '최계복 사진기점'이라는 재료상을 개업했다. 1930년대는 대구경북 사단 활동이 국내는 물론 일본, 만주까지 이름을 떨치던 시기. 지역 대표 사진가였던 최계복도 대구사진공모전, 조선일보의 '납량사진공모전', 경성일보의 '전조선사진연맹 공모전', 일본의 관서사진연맹 사진공모전 등에서 잇따라 입상하면서 "사진하면 대구의 최계복"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1942년 역사적인 백두산 등정은 최계복의 이름을 대중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으며, 해방 이후 '건국사진연맹' 또는 '경북사진문화연맹'이라 불린 단체를 통해 첫 사진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최계복은 예술 사진뿐 아니라 신문 사진, 현장 중심의 사진, 광고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국 최초를 시도한 개척자로 추앙받게 됐다. 196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향토색 넘치는 대구의 독특한 사진 소재를 더 이상 접할 수 없게 됐다. 최계복 탄생 100주년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 권정호 전 매일신문 사진부장과 사진역사연구소 최인진 소장은 "1930년대 조선의 감성이 물씬 배인 사진 작품을 통해 선생을 회고하면서, 대구경북 사단의 발전과 미래상을 조망할 수 있기 바란다"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 1930, 40년대 향토색 감성 그대로 담겨…발길마다 전국 최초 개척자로 추앙받아
'대구 영선못의 봄'-1933년 최계복 선생의 첫 작품으로 수양버들 가지가 드리워진 못둑이
지금은빌딩이 빼곡히 들어찬 시가지로 변해 있다.
'능금 따는 아가씨'-1940년대 사과의 본 고장 대구의 한 과수원에서 한 컷.
'채빙대(採氷隊)'-대구 동촌 금호강에서 얼음을 잘라 달구지에 실어 나르는 사람들에 앵글을
맞췄다.
1940년 3월 일본 사진신보지 월례 콘테스트 입선작.
'여름 교외'-1937년 조선일보 납량사진 공모전에 출품, 1등상을 받은 사진으로 최계복
선생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행렬'-대구 봉덕동 용두방천길을 따라 들어오는 소달구지 행렬.(1941년 작)
'불국사'-1940년대 불국사 전경에서 고태미가 느껴진다.
'해인사 계곡'-나귀 등에 부담을 얹고 지게를 지고 나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생생하다.
'낙동강 화원나루터'
'영수(靈水)'-1940년 합천 해인사. 나무 홈통을 타고 내리는 옥수에 포커스를 맞췄다.
'앞산과 노인'-대구 앞산이 건너다보이는 언덕은 지금의 영남대병원 자리쯤인 듯.
'고적의 향기'-1940년 7월 경주 첨성대. 주변의 초가와 '경주'라고 써 붙인 입간판이 눈길을
끈다.
'안개 낀 아침'-1941년 대구 원대동의 아침 풍경. 망태를 걸머진 두 어린이는 개똥이라도
주우러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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