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16)풍기 인삼 한정식

영주 한우를 입은 人蔘, 명품 웰빙요리로 화려한 변신

영주 한우 소고기를 다져 인삼에 붙인 다음 숯불에 구워 낸 인삼떡갈비다. 가운데 갈비뼈처럼 하얗게 보이는 것이 인삼이다.
영주 한우 소고기를 다져 인삼에 붙인 다음 숯불에 구워 낸 인삼떡갈비다. 가운데 갈비뼈처럼 하얗게 보이는 것이 인삼이다.
한우 갈비와 함께 인삼과 능이, 풋고추 등을 뚝배기에다 넣고 조려 낸 인삼갈비찜. 갈비의 감칠 맛과 쌉쌀한 인삼 향이 어우러져 조화롭다.
한우 갈비와 함께 인삼과 능이, 풋고추 등을 뚝배기에다 넣고 조려 낸 인삼갈비찜. 갈비의 감칠 맛과 쌉쌀한 인삼 향이 어우러져 조화롭다.
선비밥상과 인삼떡갈비를 소개하고 있는 약선연구가 박순화씨. 서울 궁중음식연구원과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궁중음식과 반가음식을 함께 배운 박씨는 고향인 영주 소백산으로 돌아와 20년간 인삼을 식재료로 한 약선개발에 힘을 쏟았다. 인천 계양동에 분점을 내기도 한 박씨는
선비밥상과 인삼떡갈비를 소개하고 있는 약선연구가 박순화씨. 서울 궁중음식연구원과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궁중음식과 반가음식을 함께 배운 박씨는 고향인 영주 소백산으로 돌아와 20년간 인삼을 식재료로 한 약선개발에 힘을 쏟았다. 인천 계양동에 분점을 내기도 한 박씨는 '약선이 제대로 되는 사람'이라면 분점을 더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권동순기자

암, 고혈압, 당뇨 억제에다 남성들의 발기부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인삼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이다. 그 명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수천년 전부터다. 인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천500년 전 중국의 의서 '상한론'과 '신농본초경'에 등장한다. 두 고서에는 공히 고려인삼은 인삼 중의 인삼으로 효능이 최고라고 기록돼 있다. 현대의학도 인삼의 효능에 대해 아직도 그 정체를 다 밝혀내지 못할 정도로 인삼의 유효 성분은 신비에 쌓여 있다.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인삼의 식품영양학적 영양가는 인삼 100g당 단백질이 4.5∼15.7g, 탄수화물 20.2~67.0g, 비타민(B1, B2, C, 나이아신 등), 미네랄(칼슘 2~385㎎, 인 97~385㎎, 철 7.1~33.5㎎)이 함유돼 있고 열량은 98~316㎉. 한식세계화 바람을 타고 식품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갈수록 식재료로써 가치가 더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인체 면역체계를 활성화시켜 신종플루를 이겨내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삼계탕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국민보양식의 대표적인 식재료가 된 인삼. 그 인삼과 어우러지는 우리 한식의 약선(藥膳)적 가치는 어디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

◆인삼 한정식의 본고장 영주 풍기

강화와 금산, 개성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삼의 고장으로 영호남 지방에서 유일한 곳이 영주 풍기읍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식세계화 붐이 일면서 최근 이곳을 찾는 한식연구가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인삼갈비탕과 인삼김치 등 오래전부터 풍기인삼을 이용한 약선음식이 다양하게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탁한 공기 속에서 어떻게 약선음식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도심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서도 산삼이 쑥쑥 잘 자라야지요." 음식을 대하는 맑고 바른 정신과 깨끗한 환경이 약선요리의 기본 조건이라는 약선음식 연구가 박순화(50·경북 영주시 봉현면 오현1리)씨. 약선이 한식 연구의 화두가 되면서 곳곳에서 약선이 붐을 이루고 있다는 말에 대뜸 화가 솟구치는 듯 불쑥 반문했다. 요즘 소나 말이나 다 약선을 들먹이며 정부의 한식 관련 정책예산이나 넘겨다 보는 분위기가 한마디로 기가 찬다는 얘기다.

박씨가 운영하는 약선당은 웬만한 한약방이 무색할 정도다. 소백산 산자락에 자리잡은 위치도 그렇지만 식당 문을 들어서면 함지박에 써붙여 둔 좌우명과 병풍에서부터 약선 한식집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20대 후반 새댁 시절부터 인삼을 이용한 음식을 해온 경력이 이미 20년을 넘겼다. 박씨가 쓰는 요리 재료는 인삼뿐만 아니라 능이, 송이, 표고와 더덕, 산도라지, 삼백초, 당귀, 민들레, 쑥에 이르기까지 소백산에서 나는 다양한 약초와 산나물들이다.

약선당이 개발해 손님상에 내는 인삼 한정식과 약선요리는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더덕구이처럼 양념고추장을 발라 숯불에 구워낸 인삼구이와 인삼튀김은 모양부터 잘 어울려 한식 반찬으로 제격이다. 능이를 넣은 인삼 불고기와 인삼 갈비찜, 다진 소고기를 인삼에 붙여 만든 인삼 떡갈비는 차려놓고 들여다 보기만 해도 그저 보양이 될 듯하다. 인삼김치는 발효과정에서 인삼의 효능이 열배로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돼 주목받고 있다. 인삼을 1년 이상 발효시켜 만든 초, 고를 이용해 삼백초 말랭이와 유자 소스를 쓴 표고 탕수육, 고들빼기 김치처럼 만든 민들레 김치도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밖에도 호박의 단맛을 황홀하게 연출하는 인삼호박죽과 계란 비린내를 싹 제거한 인삼계란찜도 인상깊다.

◆음식에 입맛을 맞춰내는 약선방식

몸에 해로운 포화지방은 버섯을 넣어 분해하고 인삼의 쓴맛은 슬쩍 익혀 줄여 준다. 특히 반찬에 단맛을 덜 쓰면서도 나쁜 식습관을 바로 잡아주는 박씨의 '손님 혀 속이기' 상차림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당귀를 씹으면 5리 밖에 가서 우물물을 먹어도 달게 느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당귀뿌리로 만든 장아찌를 먼저 상에 차리고선 약선음식가 나오기 전 한 점씩 먹어 보도록 꼭 권한다. 당귀 향이 입안에 퍼지면서 뒤이어 나오는 약선요리를 달콤하게 느끼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한식이 손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애쓰는데 비해 박씨는 그 반대로 음식에다 손님의 입맛을 맞춰내는 특이한 약선방식이다. 단맛을 덜 쓰고도 쓴맛을 감춰 주는 방식으로 인공조미료와 설탕 등에 잘못 길들여진 현대인의 혀를 속인 다음 몸에 약이 되는 약선음식의 세계를 열어보이는 거다. 기막힌 역발상이다.

"여름음식은 생채와 냉국 수박 오이 등 수분이 풍부한 음식이 좋지요. 반면 겨울음식은 말려서 불린 묵나물, 대추, 곶감처럼 기가 안정된 음식이 좋습니다. 제철에 맞는 음식재료를 이용하면 아무 탈이 없어요." 박씨의 약선요리에는 잠깐 선도 유지를 위해 냉장고에 넣었다 낸 재료 외에는 가급적 쓰지 않는다. 오히려 득보다 해가 될 것 같아서다.

맞춤형 코스요리로 넘어가면 이어 박씨가 개발한 '선비밥상' 차례다. 5첩 반상인 선비밥상 차림은 절제와 맑은 정신을 중시하는 선비의 체질에 걸맞게 간결하다. 포식과는 애초 거리가 멀다. 잡곡밥과 무능이(무와 능이)탕, 3색나물(묵산·박·숙주나물)과 더덕구이, 부추찜나물, 참죽부각이 5첩이고 여기에 인삼김치와 된장찌개가 곁들여진다. 선비처럼 먹물이 있다 하여 선비의 친구 사촌격인 문어(文魚)도 꼭 곁들인다. 웃으면서 선비음식을 먹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제격이다.

◆사(邪)를 버려야 약선음식

"약선음식을 돈으로 보면 안 돼요. 그냥 음식이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어디 약선이 제대로 되겠어요. 삿된 마음을 버리고 온 정신을 쏟아야만 비로소 음양오행에 맞춘 약선 음식이 만들어집니다."

박씨는 최근 한식세계화 바람에 휩쓸려 이리저리 날뛰는 일부 한식업계의 소동이 영 마뜩잖다. 제대로 내공도 쌓이지 않는 양식업계 사람들까지 나서서 정치권에 줄대고 반짝 아이디어로 예산 따내기에 혈안이 돼 있는 현실이 아무래도 심상찮다고 보는 것이다. 무턱대고 정책지원만 받은 한식산업이 무슨 올바른 뿌리를 내리겠느냐는 소리다. 오랜 연구 끝에 본질을 터득하고 기본을 갖춰야만 비로소 '손맛'을 낼 수 있고 나아가 한식산업화의 방향이 잡힐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어린아이들부터 참다운 한식, 한식의 우수성을 제대로 알게 하는 한식 교육이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한식의 우수성을 우리가 먼저 알고 해외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 예산만 탐하는 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가서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러니 박씨의 꿈인 '약선대학' 설립이 시급하다.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려면 대학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8년 전 '인삼요리 100가지'라는 책을 내기도 한 박씨는 내년쯤엔 '인삼약선요리'라는 책을 또 낼 작정이다. 지난 봄에는 '식객'에 등장했던 강원랜드 운암정에서 간부급 조리사 20명이 찾아 와 박씨로부터 인삼 약선요리를 배워갔다. 지금까지 약선당에서 박씨의 약선요리를 배워간 조리사만 100여명에 이른다. 중앙대와 세명대, 경북전문대학 등에서 약선요리 강의도 맡고 있는 박씨는 영양 음식디미방을 쓴 정부인 장씨의 현대판으로도 불린다.

"외국에서 제일 부러워 하는 것이 우리 한식입니다. 외국인들은 한국이 짧은 시간안에 신흥 장수국가가 된 까닭을 음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나이 오십이 채 안 되던 우리의 평균수명이 80세를 넘겼잖아요. 우리 음식의 우수성이 그대로 입증된 셈이지요."

서구의 패스트푸드에 맞서 우리의 발효식품을 내세운 대표적인 슬로푸드(Slow Food) 극찬론자인 박씨. 약선당 선비밥상을 받아 먹고 식당 문을 나서는 손님들은 "큰소리 칠 만하다"며 이구동성이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 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 기자 kbg@msnet.co.kr 권동순 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 기자 kbs@msnet.co.kr 엄재진 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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