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송곳니」/ 조정권

내가 아는 환쟁이 영감은

그림 한장 그려달라고 하자

보는 앞에서

제 눈을 송곳으로 찌른 모양이야

보기싫은 작자 영 보지 않겠다고

제 눈알을 파버린 셈이지

재미있는 것은 그 영감이 파버린 눈으로

세상을 보며 그림을 그려왔다는 점이야

두 눈을 뜨고 두루 세상을 보는 것보다

한쪽 눈만을 송곳처럼 뜨고 보는 편이 훨씬 참을 만했다는 거지

송곳 같은 눈으로 그림을 그렸으니 무엇을 그렸겠나

그려놓고 나선 찢고

그려놓고 나선 찢고

그림이란 그가 물 위에 써놓고 간 흔적일 뿐이지

물 위에 이름 뿌리고 간 그 영감

어느 바위틈에다 송곳눈을 박아 놓았을지도 모르지

미적 가치와 시적 재미란 두 가지 액자가 시 속에 있다. 미적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화자는 그것은 극히 주관적이라고 대답한다. 통사적으로 미적 가치는 조금씩 확장되어 왔다. 확장될 때마다 희생이 있었다. 이문열의 「금시조」와 같은 계열이다. 송곳눈 같은 미적 의식은 이 시 속에서 세속과 고립되어 있다. 세속에서 고립한 것이 아니라 세속과 상관없이 고립되어 있다. 뭇 시선을 못견뎌하는 환쟁이 영감의 속셈은 자신의 작품에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심고자 하는 것인데, 이미 눈알은 뽑았기에 스캔들은 생겼겠다, 세간의 관심은 자신의 다음 그림에 쏠렸겠다, 하지만 경지란건 기교와 정신만으로도 도달이 쉽지 않은 것, 환쟁이 영감은 속불이 터졌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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