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카만 가죽 위로 형을 뜨더니 어느새 가위질을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본을 뜨고, 한쪽에서는 잘린 조각 재봉질이 한창이다. 전등 불빛 아래 본드와 가죽 냄새에 망치질, 박음질 소리 가득한 곳. 쇼윈도 안쪽에서는 수십~수백 종류 형형색색의 정장화가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대구 중구 향촌동 대보백화점 북편 일명 '수제화 골목'의 일상이다.
백화점에 가면 수십만원 하는 구두도 이곳에선 10만원 아래로 해결이 가능하다.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른 후 비슷한 디자인을 찾아 오는 단골 손님도 많다. 30~40여년 경력의 제화공은 손님의 요구에 따라 근사한 수제화를 뚝딱 만들어 낸다. 이곳 수제화 골목을 30여년째 묵묵히 지키고 있는 수제화 기능공들 때문이다.
향촌동 수제화 골목은 1970년대에 생겨났다. 대구의 상권이 향촌동에서 동성로 쪽으로 넘어간 시점이다. 상권이 옮겨 가면서 임대료가 싸져 당시 자유극장 뒤쪽에 있던 수제화 기능공과 피혁상들이 들어왔다. 1965년 이곳에 약국을 연 서진해(73·삼호약국)씨는 "1970년 이후 수제화 가게가 하나 둘 자리를 잡더니 어느새 완전히 넘어왔다"고 했다. 최병순(53) 비비제화 대표(1974년), 김오철(47) 아미콜렉션 대표(1975년) 등 현재 수제화 골목 주력 대부분이 이 무렵 수제화 바닥에 발을 들였다. 현재는 30여년 경력의 베테랑들이다.
이전의 수제화 기능공은 대구 중구 화전동 자유극장 주변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분홍신'과 '칠성구두' 등 전국에 명성을 떨쳤던 브랜드 외에 수십개의 소규모 점포가 난전을 이루고 있었다. 수백명의 수제화 기능공이 실력을 겨루던 시절. 그러나 이 시기 입문한 사람들은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는 말 그대로 '견습생'(見習生)이었다. "열악한 환경에 저임금 생활의 연속이었고, 칼에 손이며 무릎 등을 베이는 게 일쑤였던 시절"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 개화기 '양화'가 도입됐고, 일제강점기 때에도 기능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돌암(65·탑제화·경력 47년)씨는 "현대적인 의미의 수제화는 한국전쟁 이후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조씨에 따르면 당시 기능공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1세대. 그러나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이름도 제대로 못 불렀던 사람들"인지라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2세대로 추정하는 현재 70~80대 선배들 가운데 정병학, 박재건, 안명수 등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조씨 본인은 3세대 정도 된다고 덧붙였다.
조씨의 기억으로는 '선생님'의 역할은 요리사 주방장과 비슷했다. 7, 8명 정도의 수습생을 둔 이들은 작업지시만 내렸다. 인력거를 타고 다녔다는 것으로 보아 수입이 꽤 괜찮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80년대 수제화 시장은 호황을 맞았다. 1984년에 밑창 없는 신발 껍데기 하나 만들고 수습생들이 챙기는 돈이 160원이었는데 한 달 월급이 100만원을 넘었다. "돈뭉치가 도시락통보다 더 두툼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만큼 수제화 기능을 익히려는 사람도 몰렸다. 대구제화인 동지회 총무를 맡고 있는 이봉래(56·킹제화)씨는 "한참 정점일 때 수제화 기능공이 수천명에 달했다"고 기억했다. 이런 호황기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인터넷 쇼핑몰과 대형마트가 활성화하면서 많은 수제화 공장이 하청업체가 됐다. 값싼 중국산의 공략에 불황까지 겹쳤는데 재료비가 급등하면서 그늘은 더 짙어졌다. 디자인 개발을 하지 않은 것도 불황의 원인이 됐다. 시간은 들고 돈은 되지 않는 사업이다 보니 이제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 '자칫하다가는 수제화 명맥이 끊길 것'이라는 우려는 수제화 골목 기능공들의 공통된 걱정이다.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1960, 70년대에는 장비도 "수술 도구처럼" 많았다. 요즘에는 기계화가 많이 됐다. 그만큼 간단하지만 능률이 높아져 하루에 50여족을 만들 수 있다. 그래도 예전처럼 품질은 못하다는 것이 수제화 장인들의 평. 제대로 된 수제화는 요즘에도 20일 이상은 공을 들여야 한단다. 이 경우 가격은 "수백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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