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중반 스웨덴은 보잘 것 없는 북유럽 변방의 동토(凍土)였다. 속령 핀란드까지 합쳐도 인구가 130만명을 넘지 않았으며 변변한 산업도 없었다. 그런 조국을 북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든 인물이 구스타브 아돌프 왕이다. 재위 20년동안 조세 사법 교육 등의 개혁과 함께 부국강병책을 추진, '북방의 사자'로 불렸다. 군사적 재능도 뛰어나 보병과 기병, 포병, 군수를 한데 통합하는 새로운 전술을 마련해 '근대전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단호함과 용맹을 겸비한 그는 왕보다는 야전 지휘관이 더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부하가 군법을 위반한 장교를 어떻게 처리할지 묻자 "교수대가 없는가 아니면 목재가 부족한가?"라고 되물은 것은 우명한 일화다. 전투에서는 항상 선두에 서서 싸웠다. 30년 전쟁의 주요 전투였던 뤼첸 전투에서 1632년 오늘 37세의 이른 나이로 전사했다. 서둘러 적진으로 돌진하다 호위병들과 떨어져 혼자 적진 깊숙히 와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뒷날 나폴레옹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한니발, 알렉산더 대왕과 함께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올리고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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