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머릿속에는 지방이 없는 것인가?", "수도권 등 일부 지역만의 정부인가?"
세종시 수정안 마련을 위해 처음으로 소집된 민관합동위원회에서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도시'로 조성하겠다고 공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7일 대구시청 분위기는 하루종일 썰렁했다. 시 공무원들의 반응은 "안 그래도 수도권과의 기업 유치 싸움에서 허덕이고 있는 판에 오히려 수도권과 가까워 유치 조건이 우리보다 좋은 세종시에 각종 혜택을 떠안기며 힘을 실어주고 있는 정부의 방침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대기업 유치 빨간불?
정부의 세종시 '명품 기업도시' 조성 정책으로 인해 대기업 유치와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성공 조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가 세종시 입주 기업 등에 대해 산업용지를 원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공급하고, 세제 혜택 역시 경제자유구역(FEZ)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세종시는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등으로 우리보다 못한 조건은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것밖에 없었다"며 "그런데 땅값마저 정부가 큰 폭으로 보전해주는 '선심'을 베푼다고 하는데다 총리까지 나서서 기업들에게 세종시로 가라며 등을 떠미는 판국에 어느 기업이 외면하겠느냐?"며 허탈해 했다.
정부의 안대로 분양가를 적용할 경우 세종시의 경우 3.3㎡당 30만~40만원선이 될 것이라는 게 시의 계산이다. 이달 중으로 분양할 예정인 대구테크노폴리스의 분양가가 3.3㎡당 72만원으로 2배 수준이다. 특히 다음달 분양 예정인 성서5차산업단지는 조성원가가 3.3㎡당 146만원(분양가 미정)이며, 대구경북의료단지 및 신서혁신도시의 조성원가는 287만원(분양가 미정)으로 세종시와는 아예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다양한 세제 혜택까지 더할 경우 세종시를 마다할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시는 우려하고 있다.
박인철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은 "세종시의 조성원가가 3.3㎡당 200만원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분양가를 35만원대로 하겠다는 것은 나머지 차액을 정부가 모두 부담한다는 얘기인데, 혈세를 특정 지역에 몰아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며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동안 공들여왔던 기업들이 세종시 때문에 지역에 대한 투자 의향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대구경북에 투자를 약속했던 기업들이 정부를 등에 업은 세종시로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박광길 대경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 사무총장은 "국내 대기업 R사의 경우 경상북도의 끈질긴 노력 끝에 조만간 경북에 투자하기로 결실을 봤는데, 최근 들어 돌연 세종시에 공장을 짓겠다며 가버렸다"며 "또 1년 이상 공을 들여 합의가 임박했던 글로벌 기업 G사도 얼마전 '대구 투자에 대해 복합적으로 검토를 다시 하겠다'는 통보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앞으로도 대구경북이 공을 들이며 관계했던 많은 기업들의 무더기 이탈이 우려될 정도"라며 "지역 균형 발전은 물론 대통령 공약인 '5+2 광역경제권 전략'에 따라 세종시를 위해 다수의 지방을 잃는 정책은 반드시 큰 후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은 16일 세종시에 ▷첨단산업 및 지식 기반산업 클러스터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클러스터 ▷오송의료단지, 대덕과학단지와 연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경제 허브 겸 과학 메카' 등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날 행복청이 보고한 세종시 투자유치 현황에 따르면 고려대가 바이오메디컬 단지(약 132만㎡)를, KAIST가 바이오 및 메디컬, 에너지 등 신개척 분야 연구와 벤처 육성 단지(165만㎡)를 조성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미국 보스턴 의대 등 세계 유수 의대와 병원들을 유치하기 위해 현지 투자설명회를 가지는 등 활발한 투자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세종시의 기능이 대구경북의료단지와 중첩된다는 점이다. 이상길 대구시 첨단의료복합단지추진단장은 "정부가 신성장 동력산업인 의료산업 육성을 위해 올해 대구와 오송에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지정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비슷한 역할을 세종시에다 맡기면서 혜택까지 더 얹어주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재훈 영남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의 지금까지 정책을 보고 있으면 지방의 사정을 전혀 모르거나, 지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며 "국토 균형 발전에 어긋남은 물론 지방을 몰살시키려는 정책에 대해 눈치만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같은 처지의 지자체끼리 연대해서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세종시가 서울대 등의 각종 대학과 연구소 등을 유치하려는 계획에 따라 대구경북이 추진하고 있는 교육국제화특구와 R&D 특구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현재 정부가 밀고 있는 세종시 수정안은 경제, 과학, 의료, 교육 등 전방위적으로 모든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대구경북이 추진하는 사업과 걸리지 않는 것을 찾기가 힘들 정도"라며 "(세종시 수정안이) 한 곳의 발전과 여론 무마를 위해 다른 도시의 발전 계획에 큰 차질을 줄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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