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56㎏ 한 등짐, 연탄 배달 체험해보니…

16일 본사 임상준 기자(오른쪽)가 50년간 연탄일을 하고 있는 안삼만 할아버지와 함께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6일 본사 임상준 기자(오른쪽)가 50년간 연탄일을 하고 있는 안삼만 할아버지와 함께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추위가 맹위를 떨쳤던 16일 대구 중구 동인3가 안삼만(79) 할아버지 연탄 창고. 6.6㎡ 공간에는 연탄 400여장이 반듯하게 쌓여 있다. 이곳은 대구시내를 통틀어 채 10곳이 남지 않은 연탄 소매점이다. 3년 전 연탄업이 자유업으로 바뀌면서 연탄 소매점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공장에서 차떼기로 받은 연탄을 싸게 공급하는 중간 업자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예, 예…. 갖다 드릴게요." 할아버지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운 좋게 한꺼번에 2곳에서 연탄 주문이 들어왔다. "추위가 그저 고맙지. 요샌 통 일이 없어. 하루에 연탄 한 장 배달하지 못할 때가 많아." 50년간 연탄 배달을 한 할아버지는 요즘처럼 어려울 때가 없다고 했다.

10분 거리의 주변 주택까지 연탄 배달을 직접 해 봤다. 연탄 100장이 실린 손수레를 끄는 동안 몇 몇 행인들이 곁눈질한다. 젊은 사람이 연탄 수레를 끄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인 것이다. 도착한 주택은 앞대문에서 뒷마당 연탄자리까지 거리가 멀다. 등짐으로 연탄을 날라야 한다.

'탁, 탁'. 연탄이 지게 위에 더해질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16장 56㎏.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발짝씩 내디뎠다. '헉, 헉' 거친 숨이 절로 나온다. 주저앉고 싶다. 등짐에 비하면 연탄 100장이 실린 손수레 끌기는 식은 죽 먹기다. 연탄자리까지 52걸음 거리가 천릿길처럼 멀게 느껴진다. 연탄자리는 한명이 채 다니기도 힘든 70cm 좁은 통로로 연결돼 있다. 천장이 낮아 무릎을 굽힐 땐 다리가 더욱 떨린다. 은색 돗자리가 깔린 연탄자리에 2행 5열로 연탄을 쌓았다. 긴장이 풀어진 탓에 그제야 땀으로 범벅된 등짝에 한기가 스민다. 창고에서 연탄을 꺼내고 나르고 쌓는 데까지 정확히 50분이 걸렸다. 5만원. 연탄 한 장 도매가가 420원임을 감안할 때 100장을 옮기고 번 돈은 고작 8천원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운임이 너무 박해. 요새 젊은 사람은 아무도 연탄일을 하려고 들지 않아." 낑낑대는 기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20년 전에는 연탄 100장당 1만원이 남았는데…."라며 씁쓸해했다.

할아버지는 연탄 배달일로 한달에 30만원 남짓한 돈을 번다.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수입이 100만원은 족히 넘었지만 일거리가 많이 줄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손수레를 놓지 못한다. 손자들 용돈 주는 맛이 쏠쏠하다. 교편을 잡고 있는 첫째, 둘째 등 4녀 1남도 든든한 후원자다. "애들한테 고맙지. 연탄일을 하는 애비가 창피할 법도 한데 연탄일을 많이 도왔어."

특히 할아버지에게 연탄창고는 의미가 크다. 연탄일을 시작하고 20년 만에 연탄 창고가 딸린 단칸집을 마련했다. 연탄 공장이 칠성동 등 시내에 몰려있던 시절, 연탄 창고를 갖는 것은 연탄 배달부들의 꿈이었다. "창고가 없어 연탄을 실은 손수레를 통째로 잃어버리기 일쑤였지. 대문에 이름 석 자가 내걸릴 때 저절로 눈물이 났어."

오후 3시. 두 번째 목적지인 김주이(78) 할머니에게도 연탄 300장을 배달했다. 중구청이 독거노인에게 연탄을 공짜로 나눠준 것. "나 같은 늙은이를 잊지 않고 매번 찾아줘서 너무 고마워. 뭘로 갚아야 할지…."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힌다. 할아버지는 50년간 연탄이 아닌 희망을 배달한 것이 아닐까.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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