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작, Why?]에두아르 뷔야르-식사 후

작 가 명 : 에두아르 뷔야르(Edouard Vuillard, 1868~1940)

제 목 : 식사 후(After the Meal)

연 도 : 1900년

크 기 : 28x36cm

재 료 : Oil on Canvas

소 장 처 :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Paris)

실내장식 몰입'''인물의 일상을 주 모티브로

에두아르 뷔야르(1868~1940)는 미학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 젖어 있던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그보다 나이가 한살 많은 피에르 보나르(1867~1947)를 알게 되고 1888년에는 그와 함께 '나비파'를 조직하는 중추역할을 수행한다.

나비파는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인상파에 반대하여 폴 고갱(1848~1903)의 정신을 따를 것을 주장하였던 작가들의 모임으로 뷔야르의 그림 경향 역시 형태의 단순화와 색면(色面)의 장식적 배합을 지향하는 나비파 경향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어머니와 자식의 정다운 모습이나 실내 정물과 같은 신변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고 있었으며, 깊이 있는 배색과 애정 깊은 터치를 보여줌으로써 앵티미슴(Intimism)의 대표적 작가로도 인정받게 되었다.

임의적인 분할과 대담한 생략, 넓게 칠한 단색, 검은 테두리, 원근감을 버리고 얻은 이분법적 화폭의 장식성과 채색의 섬세함 등이 특징인 뷔야르의 그림은 이처럼 나비파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 주었다. 고갱의 구획주의와 종합주의에서 받은 영향이 드러나기도 하며, 화우(畵友)였던 보나르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 취향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일본 판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단체인 나비파는 미술의 단순화를 통해 영혼성과 미술에 보편적 차원을 부여해 나가고자 했다.

프랑스 퀴소에서 출생한 에두아르 뷔야르(Edouard Vuillard)는 1877년 파리로 이주한 이후 1888년부터 나비파 멤버로 활동을 펼쳤으며, 1900년 이후에 이르러서는 사실적 작품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초상화에서 공간의 절제, 빛의 유희 등에 유념하여 작업을 하였으며, 1903년에는 '살롱 도톤'을 공동으로 준비하기도 했다. "그림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장식뿐이다"라는 작가 베르카드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면서, 뷔야르는 1892년부터 1939년까지 다양한 건물의 외벽과 실내장식에 몰입하기도 했다. 작품 '식사 후' 역시 그가 주로 다루었던 실내와 인물의 일상을 주 모티브로 묘사한 작품이다.

프랑스 사회의 근대화와 도시화는 건축이나 집의 외관뿐만 아니라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던 시기였으며 당시는 아르누보로 대표되는 실내 디자인이 막 부상하던 때였다. 앵티미스트였던 뷔야르는 반점들이 찍힌 벽지나 여인의 옷, 커튼 등으로 장식된 실내 인테리어를 통해 당대 부르주아 계층에서 유행했던 일상적인 식탁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주는 작품을 주로 제작하였으며, 이러한 장식적 묘사를 통해 세밀하고 환상적인 나비파의 작품 경향을 정립해 나갔다.

김태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